우해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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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 서면 남양리에서 전해 내려오는 비파산과 학포에 관련된 지명 이야기. 2007년 울릉군지편찬위원회에서 편찬한 『울릉군지』에 수록되어 있다. 울릉도를 우산국이라고 부르던 때에 우해왕이라는 훌륭한 왕이 있었다. 용맹이 뛰어나서 대마도까지 가서 대마도 왕의 항복을 받고 그의 셋째 딸을 데리고 와서 왕후로 삼았다. 왕후의 이름은 풍미녀였는데, 왕후가 되고부터는 사치가 너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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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 서면 남양리 해안에 있는 바위. 사자바위에 대한 전설은 두 가지가 전해진다. 우선 바위의 생김새가 사자와 같다고 하여 사자바위라고도 하지만, 주변에 위치한 투구봉과 같이 우산국의 마지막 왕 우해왕과 관련된 전설이 전해진다. 우산국을 정복하고 공물을 바치게 하라는 지증왕의 명령을 받은 이사부는 절벽으로 둘러싸인 천연의 요새 속에 있는 우산국의 지정학적 위치와 기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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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 서면 남양리에서 전해 내려오는 사자바위와 관련된 이야기. 2007년 울릉군지편찬위원회에서 편찬한 『울릉군지』에 수록되어 있다. 사자바위에 얽힌 첫 번째 이야기는 우산국의 우해왕이 왕후에게만 몰두하고 왕후는 사치만 해서 백성과 신하를 돌보지 않아 백성들이 멀리 신라까지 노략질을 하게 되었다. 신라 백성들은 우산국의 노략질 때문에 신라 왕에게 토벌해 줄 것을 여러 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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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에 있던 고대의 해상 왕국. 우산국은 『삼국사기(三國史記)』 권3 신라본기 지증왕 13년 6월조와 같은 책 권44 열전 이사부조에 처음으로 등장하며, 이후 신라가 멸망할 때까지 사료에 나오지 않다가 고려 현종조의 기록에 다시 나온다. 이와 같은 단편적인 기록만으로는 우산국 명칭의 유래를 밝힐 수 없는 실정이다. 우산국은 오래 전부터 울릉도에 토착하여 생활하던 원주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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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포의 마을 이름은 마을 뒷산이 학처럼 생겼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학의 머리 부분에 해당되는 뒷산이 무너졌기 때문에, 이 마을에는 부자가 나지 않는다고 믿는다. 광복 후 국회의원 선거가 한창일 때, 이 마을의 유권자 표를 전부 몰아 한 사람에게 던질 터이니 이 학머리를 다시 쌓아 재생시킬 수 없겠느냐는 웃지 못할 이야기도 있다. 풍미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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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울릉도에 있었던 고대의 소국인 우산국과 관련하여 역사적으로 기록된 내용은 거의 없다. 246년(동천왕 20) 중국 위(魏)나라의 관구검(貫丘儉)이 고구려를 침략한 사실을 기록한 『위지(魏志)』에 “동해에 또 하나의 섬이 있으나 언어가 통하지 않는다”는 대목이 있는데 이것이 우산국을 추측할 수 있는 최초의 기록이다. 『삼국사기(三國史記)』 권4 신라본기 지증마립간조에 의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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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에서 전해 내려오는 우산국의 우해왕과 풍미녀에 관한 이야기. 1997년에 울릉문화원에서 편찬한 『울릉문화』 제2호에 수록되어 있다. 지금의 울릉도를 옛날 신라시대에는 우산국이라 불렀다. 우산국이 가장 왕성했던 시절은 우해왕(于海王)이 다스릴 때라고 한다. 우해왕은 신체가 건강하고 기운도 장사여서 바다를 마치 육지처럼 주름잡고 다녔다. 우산국은 비록 작은 나라였지만 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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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군의 주도인 울릉도는 지질학적으로 제3~4기 초에 걸쳐 동해에 솟아난 거대한 화산의 정상부에 해당하며, 현무암과 조면암 등으로 이루어진 알칼리성 화산암 지역이다. 섬의 중앙부에는 울릉도의 최고봉인 성인봉[984m]이 솟아 있고, 북면에는 울릉도에서 유일하게 평야지대라고 부를 만한 나리분지가 있다. 섬 전체가 하나의 화산체여서 해안의 대부분이 절벽을 이루고 있으며, 섬 전체에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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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우산국의 왕비. 남편은 우산국 우해(于海)왕이며, 딸을 하나 두었는데 별님이라 불렀다. 구체적 문헌은 남아있지 않지만, 전설에 의하면 우산국왕 우해(于海)가 대마도에서 도주의 셋째 딸 풍미녀(豊美女)를 데리고 와서 왕후로 삼았는데, 사치가 너무 심해서 결국 우산국을 멸망케 하였다는 내용이 전해진다. 풍미녀와 관련된 이야기는 사자바위, 비파산과 학포 등의 일부 지명과 관련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