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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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울릉도로 도망하여 거주하였던 유민. 고려 후기와 조선 전기에는 강원도 지역에서 울릉도로 도망가 살던 사람들이 있었다. 김을지 역시 그러한 사람들 중 하나였다. 조선 중앙 정부는 이러한 사람들이 군역(軍役)을 피해 국가의 통제가 잘 미치지 않는 먼 섬으로 도망하였다는 것과, 가짜 왜구 행세를 하며 본토의 연해 마을을 노략질 하는 일이 있으며, 울릉도·독도 지역에 머물러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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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울릉도에 사람이 거주하고 있음을 확인하고 해금정책의 기초를 마련한 문신. 1400년(정종 2) 좌간의(左諫議)를 거쳐 1409년(태종 9) 우간의(右諫議)를 지냈다. 1411~1413년 강원도관찰사를 지내고, 이듬해 인녕부윤(仁寧府尹) 재직 당시에 정조사(正朝使)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호조판서로 재직하고 있던 1416년(태종 16) 박습은 태종에게 자신이 강원도관찰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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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울릉도 거주민을 본토로 이주시킨 정책. 고려 말기에서 조선 초기에는 울릉도에 주민이 거주하면 울릉도를 침입한 왜구가 이곳을 근거지로 하여 강원도 등을 침구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또한 당시에는 울릉도는 육지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울릉도에 들어간 어민들로부터 조세 수취와 역역 동원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실정이었다. 조선 초기 연근해 개발이 이루어지면서 왜구 등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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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경상북도 울릉군의 역사. 울릉도의 경우 일제강점기인 1917년 도리이 류조[鳥居龍藏]에 의해 처음 유물의 채집이 있은 이후 후지타 료사쿠[藤田亮策] 등의 조사가 있었다. 해방 후 국립박물관에 의해 울릉도의 고고학적 조사가 실시되었다. 1947년과 1957년에 김원룡 등에 의해 체계적인 조사가 이루어졌고, 1963년에 김정기에 의해 보충 조사가 실시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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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3년(고종 20) 4월 강원감영에서 울릉도 개척단 파견 당시, 개척에 소요될 인원 및 물자에 대한 예상명세서. 울릉도는 조선 초 태종·세종 양대에 걸친 공도화(空島化) 정책으로 오랫동안 정부에 의해 방치되었다. 이로 인해 일본 어민들의 침탈 대상이 되다가‚ 조선 말기인 고종 연간에는 러시아까지 관련되어 국제적 분규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이 무렵 조선에서는 울릉도의 영유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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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1년(순조 1) 야다 다카마사가 저술한 안용복의 이야기가 실린 일본 문헌. 울릉도를 오가며 어업 행위를 하는 어부들의 이야기와 안용복(安龍福)에 대한 이야기가 기록된 책이다. ○ 독도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오키도오고로부터 송도는 서쪽으로 바다 멀리 떨어져 있는데 동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타고 2박 2일 가야 되며, 도법 36정 1리[약 3.3㎞]로서 해상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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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에서 1910년까지 조선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의 울릉도 역사. 울릉도는 고려 말 왜구 때문에 무인도가 되었으나, 조선 초 이래 육지의 백성들이 계속 건너가 살았다. 행정구역상으로는 강원도 울진현(蔚珍縣)에 소속되었지만, 이곳이 왜구의 거점이 된다고 하여 조선 전기에는 쇄환정책(刷還政策), 조선 후기에는 수토정책(搜討政策)을 시행하였다. 그리하여 본토로부터 울릉도에 들어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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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대마도도주. 아들 종정성(宗貞盛)을 두었다. 1407년(태종 7)에 대마도수호(對馬島守護) 종정무(宗貞茂)가 다이라도오젠[平道全]을 파견하여 토물(土物)을 바치고, 왜구에게 잡혀갔던 사람들을 돌려보냈다. 또한 무릉도(武陵島)[현 울릉도]에 여러 촌락(村落)을 거느리고 가서 옮겨 살기를 청하였으나 태종으로부터 거절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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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울릉도 쇄출(刷出) 정책에 반대한 문신. 안무사(按撫使) 김인우가 울릉도로부터 1417년 2월 5일 귀환하여 복명하자, 태종은 우의정 한상경에게 명하여 육조의 대신들과 대간들을 소집해서 어전회의를 열어 울릉도 거주민의 육지 이주에 대한 가부를 의논하게 하였다. 이 어전회의에서는 육지 이주에 반대하는 다수의 의견과 속히 이주시키자는 공조판서 황희의 주장이 엇갈렸는데 태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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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울릉도 해금정책 확정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문신. 본관은 장수(長水). 초명은 수로(壽老). 자는 구부(懼夫), 호는 방촌(尨村). 황석부(黃石富)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황균비(黃均庇)이고 아버지는 자헌대부 판강릉대도호부사 황군서(黃君瑞)이며 어머니는 김우(金祐)의 딸이다. 개성 가조리(可助里)에서 출생하였다. 황희는 울릉도·독도 지역과 관련해서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