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마네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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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6월 25일 북한 공산군이 북위 38°선 이남을 침공함으로써 일어난 한국에서의 전쟁. 6·25사변이라고도 하며, 국제적으로는 한국전쟁(韓國戰爭, Korean War)[일부에서는 Korean Civil War라고 주장하기도 함]이라고들 한다.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이 조인되었고, 현재까지 휴전선에 의해 남분 분단 상태로 있다. 1950년 6월 25일 6·25전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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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과 관련하여 1945년 이전에 제작된 문서와 책·기록 등 현존하는 모든 서책류. 1. 『삼국사기(三國史記)』 1145년(인종 23) 김부식(金富軾) 등이 삼국시대 문헌과 사서(史書)에 의거하여 편찬한 사서이다. 권4 신라본기(新羅本紀) 4 지증마립간(智證麻立干) 13년조 등에 울릉 지역과 관련한 기록이 보인다. 2. 『고려사(高麗史)』 독도와 관련한 기록은 「지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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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8년(고종 5) 일본의 태정관에서 독도가 조선 영토임을 결정한 문서. 1868년 일본 메이지 정권이 수립된 이후, 1869년(고종 6) 일본 메이지 정부 총리대신과 외무대신은 외무성 고관들을 조선에 보내 정세를 몰래 살펴보도록 했는데, 그때 조사 항목 중에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 영토로 되어 있는 전말’을 조사해 오도록 지시하였다. 그 지시 사항과 조사 복명서(復命書)는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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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등록법」에 의하여 독도에 거주할 목적으로 지방자치단체에 등록하는 제도. 2009년 현재 독도의 행정 구역명은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 1~96번지이다. 가족관계등록 인구수는 2019년 12월 31일 기준 3,555명이며, 2019년 12월 기준 독도 주민등록 인구는 14세대[14명]으로 되어 있다. 여기서 주민등록 인구는 「주민등록법」상 거주를 목적으로 현재 독도에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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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에는 강치(물개과)가 많았다. 사람이 배를 타고 독도에 오르면 수백 마리의 강치가 사람을 반기면서 아양을 떨었다. 그런데, 이 귀여운 강치를 일본 사람들은 몽둥이로 콧등을 때려서 잡았다. 이 가죽으로 안경집, 가죽신 등을 만들었으며, 그 기름은 항해할 때 불을 켜는 연료로 사용했다. 강치의 남획으로 세계적으로도 희귀종이 되어버렸고, 독도에서도 볼 수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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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에서 이루어지는 문학, 미술, 음악, 무용 등 분야에서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활동 또는 그 작품. 세상에 대한 인간의 감수성과 상상력의 의한 사고 및 사유의 결과물로서 잉태되는 정신적, 물질적 가치는 철학, 종교, 과학, 미술, 음악, 체육 등의 형태로 우리의 삶과 직결되며, 결과적으로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작용을 한다. 울릉도 및 독도에는 특별한 인문 환경 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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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과 1952년에 미국 공군 폭격대가 독도를 폭격한 사건. 해방 후 울릉도 및 강원도 어민들은 삶의 터전인 독도와 그 주변 해역에서 어로활동을 하였다. 그런데 미국은 대일 강화조약 이후 독도를 미국의 폭격 연습장으로 이용하고 있었다. 미군정은 이 사실을 주민들에게 전혀 알리지 않아, 결국 조업 중이던 한국 어민들은 미 공군의 독도 폭격 연습으로 인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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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고종 42) 일본 정부가 독도를 일방적으로 시마네현에 편입시킨 사실을 알린 고시. 1905년 2월 22일 시마네현은 내부 회람용이란 도장을 찍어 관보에 게시된 바 없이 「시마네현 고시 제40호」를 고시하였는데, 독도를 일본 땅에 편입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이는 출처를 알 수 없는 회람본일 뿐이었으며, 공식적으로 고시된 사실이 없다고 알려져 있다. 당시 몇몇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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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경상북도 울릉군의 역사. 울릉도의 경우 일제강점기인 1917년 도리이 류조[鳥居龍藏]에 의해 처음 유물의 채집이 있은 이후 후지타 료사쿠[藤田亮策] 등의 조사가 있었다. 해방 후 국립박물관에 의해 울릉도의 고고학적 조사가 실시되었다. 1947년과 1957년에 김원룡 등에 의해 체계적인 조사가 이루어졌고, 1963년에 김정기에 의해 보충 조사가 실시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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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년 울릉군수 심흥택이 독도가 일본 영토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국왕에게 올린 보고서. 1906년 3월 28일 독도가 일본 영토로 편입되었다는 사실을 통보받은 울릉군수 심흥택은 다음 날 바로 강원도관찰사에게 보고하였고, 그 내용은 강원도관찰사 서리 춘천군수 이명래가 1906년 4월 29일자로 의정부 참정대신에게 올린 ‘보고서 호외’에 수록되어 있다. 심흥택은 강원도관찰사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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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에서 활동한 서지학자. 서지학자였던 이종학은 1980년대 초부터 독도에 관한 일본 측 자료를 수집하려고 수십 차례 일본을 왕래하였다. 이 과정에서 수천 종의 사료적 가치가 귀중한 독도 관련 자료를 수집하였다. 이를 배경으로 시마네현 관계자에게 독도가 한국 땅임을 강조하였다. 1997년 독도박물관에 그가 30평생 모았던 독도·동해 명칭과 관련된 자료들을 기증하였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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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 독도의 일본 편입을 결정한 일본 정부 문서. 1904년 러일전쟁 직후 일본의 시마네현에 거주하는 나카이 요사부로[中井養三郞]라는 어업가가 독도 근해 지역의 물개 어로 독점권을 대한제국 정부로부터 얻기 위해 일본 농상무성에 이를 교섭해 주도록 요청하였다. 당시 일본 정부는 기회를 틈타 독도에 해군 감시 망루를 설치하고자 하였다. 이에 일본 해군성 수로부장은 나카이 요사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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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시마네현[島根縣] 의회는 1905년 고시 제40호를 통해 독도를 시마네현 오키군[隱岐郡] 오키노시마[隱岐の島]에 편입한 지 백 주년이 되는 2005년 2월 22일을 ‘다케시마[竹島]의 날’로 정하는 조례안 제정을 강행하여 의회에서 통과시켰다. 그후 “독도를 돌려 달라”는 내용의 텔레비전 광고를 내보내고 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지금으로부터 3백여 년 전 일본의 도쿠가와 막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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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한국무용가 백현순이 연출한 독도가 영원히 한국의 땅임을 하늘에 고하는 내용을 담은 창작 무용. 2005년 3월 22일 독도 사수 울릉군민연대 소속의 37개 사회단체와 울릉도 주민 3,000여 명이 도동항 부두에서 일본의 ‘다케시마의 날’ 제정을 규탄하는 집회를 가졌다. 이 행사에서 대회사와 규탄사에 이어 울릉군민의 독도 사수 결의문이 채택되었다. 선박 15척에 독도 사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