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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500003
한자 人文地理
영어의미역 Human Geography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지역 경상북도 울릉군
집필자 정원일

[정의]

경상북도 울릉군에서 지표상의 인문적 요소를 분석 대상으로 지역의 의의를 일반적으로 고찰, 연구하는 학문 분야.

[개설]

울릉군의 총 면적은 72.82㎢로 경상북도 전체면적 19,440.7㎢의 약 0.37%에 해당되고 우리 나라 군 중에서 가장 면적이 작은 군이다. 면적 중 경지 면적은 12.97㎢로 18%이고, 임야 면적은 55.48㎢로 76%이다. 각 읍·면별 크기는 서면이 27.20㎢로 가장 넓고 다음이 북면으로 24.31㎢이다. 가장 작은 곳은 울릉읍으로 21.31㎢이다.

[지리적 위치]

울릉군의 동단은 독도 동도의 동경 131° 52′20″이며, 서단은 서면북면대풍령 동경 130° 47′37인데 이중 독도 동도의 동단은 경도 상 우리 나라 최동단에 해당된다. 남단은 독도 동도의 북위 37° 14′14″이고, 북단은 북면의 북위 37° 33′01″이다.

울릉군의 연장 거리는 동·서 간이 96.3㎞이고, 남·북 간이 34.8㎞이다. 육지와의 거리는 포항과 217㎞, 후포와 159㎞, 묵호와는 161㎞, 휴전선과는 118㎞이다. 육지와의 최단거리는 경상북도 울진군 죽변면으로 직선거리가 130.3㎞이다.

[연혁]

문헌상 울릉도에 사람이 살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기록은 3세기부터 나타나고 있다. 512년 이사부우산국을 정복하였고, 930년(고려 태조 13) 이후 우산국에서 고려에 여러 차례 방물(方物)을 진상했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시대에는 울릉도에 살던 사람을 본토로 강제 이주시키는 쇄환정책이 실시되었다. 이에 따라 빈 섬이 된 울릉도에 일본인들이 마음대로 들어와 나무를 베어가고 고기를 잡아 갔으며, 독도에 다케시마[竹島]라는 이름까지 붙여 놓았다.

이에 동래 어부 안용복이 1693년(숙종 19)과 1696년에 일본 막부로부터 독도가 조선 땅이라는 사실을 확인 받아, 이것이 양국 정부 간 공식 협약이 되게 하였다. 1882년(고종 19) 검찰사 이규원의 건의에 따라 쇄환정책을 수정하여 개척 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게 되었다.

[행정구역]

1. 울릉읍

1900년 군제(郡制) 실시 이후,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에 따라 저동·도동·사동의 3개 동으로 통합하고 각 동마다 3구로 나누어 3동 9구제를 실시하였으나 1952년 4월 지방 자치제에 따라 구제를 폐지하고 도동 2개 동, 사동 2개 동, 저동을 그대로 두어 5개 동으로 편제하였다.

1961년 도동·저동·사동을 자연마을 또는 동세(洞勢)에 따라 각기 3개 동으로 개편하여 9개 행정동으로 편제하였다. 1979년 5월 1일 울릉읍으로 승격되었다. 1988년 5월 17일 동의 명칭이 리로 변경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1) 도동리

1882년(고종 19) 울릉도 개척령이 반포되면서 주민이 입도하기 시작하여 이곳에 자치 지휘소를 설치하고 도방청이라 불렀다. 도방청은 번화한 곳을 가리켰으며, 이 후 도방청의 도(道)자를 따서 도동리라 하였다.

2) 저동리

개척 당시 이곳 갯벌에 모시가 많이 자생해 있었기 때문에 ‘모시가 많은 갯벌’이란 뜻으로 모시개라 부르다가 지명을 한자로 표기할 때에 모시 저(苧)자를 써서 저동리라 하였다.

3) 사동리

처음 개척민들이 울릉도로 이주하였을 때, 섬을 일주하였으나 어디에서도 모래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곳에는 옥과 같은 맑은 모래가 바닷가에 가로 놓여 있었기 때문에 지명을 ‘옥 같은 모래가 누워 있다’는 뜻에서 와옥사(臥玉沙)라 하였고, 뒤에 한자식 이름으로 표기할 때 사(沙)만 취하여 사동리가 되었다.

2. 서면

1906년 서면을 새로 설치한 이래, 구제(區制) 실시에 따라 남서동을 2개 구로 남양동과 태하동을 각각 4개 구로 나누어서 3동 10구제가 되었다. 그 뒤 1952년 구제를 폐지하고 남서동을 2개 동, 남양동과 태하동을 각기 3개 동으로 해서 8개 동으로 하였으며, 1960년 8월에 태하동을 2개 동으로 개편하여 7개 행정동으로 하였다. 그 뒤 1988년 5월 17일 동의 명칭이 리로 변경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1) 남양리

원래 골계의 일부였으나 행정 구역을 편제할 때 2개 지역으로 나누어 한 지역을 남양리라 하였다.

2) 남서리

남양리의 서쪽이라 하여 남서리라 하였다.

3) 태하리

개척 때 사람들이 이곳에 와 보니 바닷가 산에 황토를 파낸 구석이 있었기 때문에 큰황토구미라 하였던 곳이다. 뒤에 한자식 지명으로 표기할 때 대하(臺霞)라 하다가 다시 태하(台霞)라 표기하였다. 태하는 1882년 개척령이 반포되자 최초로 이주해 온 주민들의 본거지로 1902년까지 울릉도의 행정 중심지였고, 울릉도에서는 본래의 토속적 모습이 가장 많이 남아 있는 곳이다.

3. 북면

1900년 군제 실시로 설치되어 1906년 석포·천부·나리·현포·평리의 5개 동을 관할하였으며,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에 따라 3동 9구제가 되었다. 1952년 4월 지방 자치제에 따라 구제를 폐지하고 6개 동으로 하였다. 1968년 나리통(羅里統)을 동(洞)으로 바꾸어 8개 행정동으로 편제하였으나, 1988년 5월 17일 동의 명칭이 리로 변경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1) 천부리

개척 초기 이곳에 살기 위해 온 사람들이 나무를 베어낸 뒤 막을 치고 사방을 살펴보니 빽빽이 둘러싼 나무들 때문에 나무를 베어 낸 곳으로 동그랗게 하늘만 보였기 때문에 천부(天府)라 하였다.

2) 나리

천부리에서 약 10여 리 올라가면 울릉도에서 가장 높은 성인봉 아래 매우 큰 분지가 나리이다. 이곳은 옛 분화구의 화구원으로 울릉군 유일의 평야지대이다. 예전부터 지금까지 나리가 많이 자라고 있는데, 처음 이 섬에 온 개척민들이 먹을 것이 없어 허덕이다가 봄이 되면 이곳의 나리를 캐어서 5~6월까지 연명하였다고도 한다.

3) 현포리

동쪽 촛대바위의 그림자가 바다에 비치면 바닷물에 검게 보이는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지형]

섬 전체가 신생대 제3기에서 제4기 초에 걸친 화산활동에 의해 형성된 종상화산(鐘狀火山)으로, 조면암·안산암·현무암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중앙에는 최고봉인 성인봉[984m]이 있고, 북쪽 비탈면에는 칼데라화구가 무너져 내려 생긴 나리분지가 있다.

해저화산의 폭발로 이루어진 섬이기에 평지는 거의 없고 해안은 대부분 절벽으로 이루어져 있다. 주된 지형으로서 화산지형과 해안지형 및 염풍화(鹽風化)가 곳곳에 특징적으로 나타난다. 울릉도의 형태는 불규칙한 5각형으로 가두봉갑(可頭峰岬)·도동갑(道洞岬)·섬목갑·대풍령(待風嶺)의 4개 갑각(岬角)이 돌출해 있다.

그러나 나머지 부분은 해안선이 단조롭다. 섬의 중앙부에는 최고봉인 해발 984m의 성인봉이 있고, 이 곳에서 산맥이 세 방향으로 뻗어 있는데 성인봉-가두봉, 성인봉-두루봉, 성인봉-대풍령의 삼능선이 주맥을 이루고 있다. 이 주맥에 의해 동남부사면, 서남부사면, 북부사면으로 구분되며, 아울러 하천도 3개 수계로 나눈다.

[지질]

지질은 신생대 3기 말에서 4기 초에 일어난 화산활동에 의하여 이루어진 현무암류와 이를 덮고 있는 조면암과 응회암으로 대부분 구성되어 있다. 응회암은 해발에 관계없이 나타나며, 조면암은 주로 고산지대에 많이 분포하고 있다.

[기후]

연평균 기온은 12℃이고 월별로는 7월과 8월에 20℃ 이상, 1월은 1~2℃ 정도 기온을 나타내고 있다. 연평균 강수량은 1,236㎜ 정도로 눈과 비가 많이 오는 곳 중 하나이다. 또 특별한 건기가 없고 계절적인 강수량의 차이가 크지 않다는 것이 울릉군 강수량의 가장 큰 특징이다. 강수일수는 45일로 전국 최고를 기록하고 있다. 한편, 가장 많은 강수량을 기록하고 있는 월은 대체로 9월을 전후한 무렵이다. 이는 태풍이 동해로 진출할 때 많은 강수를 동반하기 때문이다.

주목할 것은 겨울철 강설량이 반영되어 12~2월의 겨울철 강수량이 다른 지역에 비해 높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는 곧 울릉군의 높은 겨울철 강설량이 반영된 것인데 최심적설량(最深積雪量)은 1월과 2월에 2m가 넘으며, 12월에도 눈이 1m 넘게 온다. 적설 일수는 대략 70일 내외이며 평균 적설량은 1m 내외이다. 바람은 60%이 남동풍이며, 연 평균 풍속은 보통 3.5㎧~4.5㎧로서 전국에서 바람이 가장 강한 편이다.

[식생]

식생은 6종의 천연기념물을 포함해 향나무·후박나무·동백나무 등 650여 종[수목 194종, 초화 456종]이 있으며, 흑비둘기 등 62종의 조류[텃새 24종, 철새 38종]가 서식하여 동·식물의 보고라 할 수 있다.

[인구와 산업]

주민수는 1974년의 30,000명을 최고로, 이후 계속 감소하여 현재 10,000명 수준이며, 단위 면적당 126명의 인구가 살고 있다. 경상북도 내 시·군·구 중 총 인구수가 가장 적지만, 단위 면적으로는 8번째이고, 우리나라 섬 가운데에서도 인구수가 많은 편에 속한다. 군내 3개 읍·면 인구 분포는 울릉읍 71%, 서면 16%, 북면 13%이다.

군 면적 중 76%가 임야이고 18%는 경지인데, 그 경지의 약 96%는 밭이다. 예전에는 주로 옥수수·감자와 같은 잡곡을 재배하였으나 지금은 산채와 더덕 등의 약초를 재배해서 농가 소득을 올리고 있다. 또한, 근해는 한류와 난류가 만나는 조경 수역이므로 오징어·꽁치 등이 많이 잡힌다. 특히 오징어는 맛과 품질이 우수하여 지역 특산물로 전국적인 명성을 얻고 있다.

주된 산업은 수산업이지만, 최근에는 관광객이 늘어나 관광업의 비중이 점차 커지고 있다. 해상 교통은 포항·후포·묵호 등에 정기 여객선이 취항하고 있으며, 해안선을 따라 섬을 일주하는 지방도 926번이 개설되어 있다. 예로부터 도둑·공해·뱀이 없고, 향나무·바람·미인·물·돌이 많다 하여 3무(三無) 5다(五多)의 섬이라고도 한다.

[관광자원]

울릉도에는 항구, 등대, 공원 및 전망대, 박물관, 문화재, 유적 및 기타로 구성되어 있는 인문 관광자원 총 19개소가 있다. 이 외에도 섬, 폭포, 자연경관, 식생, 바위 등 자연 관광자원 총 25개소가 있는데, 대부분이 해안 절경 등의 자연환경을 배경으로 한 독특한 자연 경관을 연출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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