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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500513
한자 鬱陵羅里-
영어의미역 Wooden Shingles and Thatched Roof Tumakjip Houses in Na-ri, Ulleung
분야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경상북도 울릉군 북면 나리 111-1번지 외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집필자 김찬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가옥
양식 투막집|너와집
건립시기/일시 1940년대|1945년연표보기
정면칸수 4칸|5칸
측면칸수 1칸
소재지 주소 경상북도 울릉군 북면 나리 111-1번지지도보기
소유자 울릉군
문화재 지정번호 국가민속문화재 제256호
문화재 지정일 2007년 12월 31일연표보기

[정의]

경상북도 울릉군 북면 나리분지에 있는 1940년대에 건립된 너와집 및 투막집.

[위치]

너와집은 북면 천부리에서 남쪽 성인봉 쪽으로 2.3㎞ 가량 올라간 곳에 해발 340~390m의 나리분지에 있는 마을 초입에 있다. 나리분지성인봉의 칼데라 화구가 삼각 형상으로 함몰하여 형성된 이중식 화산이 분화구에서 화산재가 쌓여 평원을 이룬다. 분지의 한 변의 길이는 약 2㎞이며, 면적은 약 1,487,610㎡ [약 150정보]로 울릉도에서 가장 넓은 평지에 해당된다. 또한 투막집은 나리분지 내 너와집에서 50m쯤 떨어진 남쪽에 위치하고 있다.

[형태]

나리집의 건립 시기는 1940년대이며, 울릉도 개척 당시에 정착민이 지은 가옥 형태를 비교적 잘 간직하고 있다. 가옥은 마을 초입의 넓은 평지에 터를 잡고 남서향으로 있는데, 규모는 정면 5칸, 측면 1칸이다.

평면 형태는 정지를 중심으로 왼쪽에 3칸의 온돌방이 있으며, 그 왼쪽에 마구간 1칸을 배열시킨 일자형 온돌 중심형 홑집이다. 방은 나지막한 자연석 기단 위에 큼직한 자연석 초석을 놓았고, 그 위에 직경 24~90㎝ 내외의 통나무 7개를 정(井)자로 짜올려 벽체를 구성했다. 벽체의 통나무 사이의 틈새는 진흙으로 빈틈없이 메웠다.

처마 끝단 사면에는 가는 막기둥을 세웠고, 비늘판벽으로 만든 우데기가 있다. 방벽과 우데기의 사이 공간인 축담의 폭은 앞쪽이 1.3m이고, 나머지는 0.9~1.1m 내외이다. 축담 바닥에서 방벽까지의 높이는 대략 2.2~2.3m 정도이고, 우데기 높이는 1.8m 정도이다. 겨울철 눈이나 여름철 일사를 피할 수 있게 해주는 축담은 작업, 저장, 생활 공간으로 요긴하게 쓰이는 장소이다.

각 방문 앞에 우데기 출입문을 내어 출입과 실내 채광 및 통풍의 편의를 고려했다. 각 방은 축담을 통해 드나들며, 방과 방 사이에는 문이 없다. 정지의 벽체는 우데기가 대신했다. 정지는 축담보다 70㎝ 가량 바닥이 낮고, 부뚜막에는 솥 두 개가 걸려 있다. 지붕은 우진각에 너와를 일정 간격으로 여러 겹 얹고, 그 위에 큰 돌로 눌러 바람에 날려가지 않도록 했다. 앞쪽 우단부에는 ㅅ자 형태에 띠 지붕을 이은 변소가 있다.

해방을 전후한 시기인 1945년대에 건립된 투막집의 배치는, 서북쪽을 향한 몸채를 중심으로 왼쪽에 헛간, 오른쪽에 측간과 돼지우리가 있어 전체적으로는 ㄱ자형을 이룬다. 마당 주위에는 바자울을 둘렀다. 몸채 평면은 왼쪽부터 정지, 큰방, 머릿방, 사랑방 순으로 배열된 4칸 집이며, 사랑방은 후대에 지은 것이다.

큰방과 머릿방은 얕은 기단 위에 큼직한 자연석 초석을 놓아 직경 24~80㎝ 크기의 통나무 8개를 정(井)자로 짜 벽체를 만들었다. 통나무 사이의 틈새는 진흙으로 메웠다. 사랑방은 네모 기둥을 세우고 토벽으로 마감한 것이다.

기단 사면 끝단에는 막기둥을 세웠고, 띠로 이엉을 엮어 만든 우데기가 있다. 이는 처마도리를 방 벽의 통나무를 길게 돌출시켜 받도록 한 구조이다. 이런 구조는 남서리 신원수 가옥, 남양리 이종해 가옥에서도 볼 수 있다. 방벽과 우데기 사이의 축단 폭은 0.8~1.4m 내외이다. 방벽 높이는 2.1m 가량이다.

방문은 문얼굴이 들어설 자리만큼만 통나무를 잘라내고 양측에 문설주를 세워 외여닫이 교살문을 달았다. 그러나 각 방 사이에 사잇문은 없다. 우데기 출입문은 거적문으로, 각 방 앞에 내어 출입과 채광 및 편의성을 고려했다.

정지는 기둥만 세우고 우데기가 벽체를 대신했다. 정지 바닥은 축담보다 60㎝ 가량 낮으며, 부뚜막에 솥 두 개가 걸려 있다. 정지 뒤쪽 축담에는 장독대가 있다. 각 방 천장은 모두 고미반자이고, 지붕은 우진각에 띠로 이엉을 엮어 얹었다.

1945년에 지은 투막집은 원래는 3칸이었으나 한 칸을 더 달아 현재 규모는 4칸이다. 지붕은 새로 이었으며 큰방과 가운데방의 벽은 귀틀로 되어 있고 정지의 부뚜막은 아궁이에서 내굴로 되어 있는데 정지 바닥은 죽담보다 낮게 하여 계단을 한단 놓아 오르내리게 하였다. 정지에는 별도의 벽을 두지 않고 옥수수대로 세워 돌린 우데기로 가렸다. 방 주위의 죽담은 앞쪽만 더 넓어져 편하게 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울릉도 개척시 자연 환경 및 생업과 주생활을 짐작할 수 있는 가옥 형태의 구조물이다. 특히 통나무로 우물 틀처럼 쌓아올려 만든 벽체에 너와로 지붕을 이은 너와집은 울릉도에서 유일해 그 가치가 높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8.06.29 문화재 지정 현황 현행화 중요민속문화재 -> 국가민속문화재
2017.03.21 항목명 변경 울릉 나리동 너와집 및 투막집 -> 울릉 나리 너와 투막집과 억새 투막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