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00036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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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所陽面花心戰鬪 |
영어공식명칭 | Hwasim Battle in Soyang-myeon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윤상원 |
발생|시작 시기/일시 | 1951년 9월 - 소양면 화심전투 시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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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결 시기/일시 | 1951년 10월 - 소양면 화심전투 종결 |
발생|시작 장소 | 화심전투 -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화심리 |
성격 | 빨치산 토벌 작전 |
관련 인물/단체 | 오기성 |
[정의]
한국전쟁 당시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화심리에서 조직된 자위대가 빨치산들로부터 마을을 구하기 위해 싸운 전투.
[개설]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화심 마을에 빨치산이 자주 출몰하자, 오기성은 자위대를 조직해서 1951년 9월~10월에 걸쳐 빨치산들의 공격으로부터 마을을 지켜냈다.
[역사적 배경]
1950년 한국전쟁 당시 북한군에게 점령당했던 전라북도 완주군은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해 1950년 9월 28일 국군에게 수복되었다. 퇴로가 끊긴 북한군은 지리산, 덕유산, 백운산 등지로 숨어들어 빨치산이 되었다.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화심리는 전라북도 완주군 동상면에 있는 전북지구 빨치산 총본부와 임실지구의 빨치산 요새에 끼어 있어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경과]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화심리에 빨치산들이 자주 출몰하자 오기성은 30여 명 대원을 모아 자위대를 조직해서 마을의 치안을 담당했다. 1951년 9월 2일 송광사 뒷산 위봉고지를 맡고 있던 이기형 초조대장으로부터 위급한 전갈이 왔다. 오기성이 이끄는 자위대원들이 급히 달려갔으나 12명 초조대원들은 전멸을 당한 상태였다. 1951년 9월 5일 새벽 2시 빨치산 부대가 급습해 왔다. 자위대는 목숨을 걸고 싸웠으나 대원 6명과 양민 3명이 목숨을 잃었다. 대장 오기성도 손가락 하나를 잃었다. 1951년 10월 11일 또다시 빨치산들이 습격해 왔다. 이에 맞서 싸운 자위대는 적들을 추격해 3명을 사살했다. 얼마 후 웅치재 산판에서는 21명 인부가 빨치산들에게 살해를 당했다. 오기성 부대는 이들을 찾아 총격전을 벌여 박원복을 잡아 경찰에 넘겨 전향하도록 유도했다.
[결과]
소양면 화심전투에서 오기성 부대는 스스로 지방 자위대가 되어 빨치산들로부터 마을을 보호했다.
[의의와 평가]
소양면 화심전투는 한국전쟁 당시 후방에서 주민들로 구성된 유격대를 조직해 빨치산 소탕 작전에서 전과를 올렸다는 데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