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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400072
한자 人文地理
영어의미역 Human Geography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조규복

[정의]

경상북도 안동 지역에 분포하고 있는 인문지리적 요소.

[개설]

인문지리(人文地理)는 지표 위에서 일어나는 인간 활동과 관련된 모든 현상을 연구하는 사회과학의 한 분야이다. 특정 지역의 지표와 연계되어 존재하거나 나타나는 기후, 생물, 자연, 도시, 교통, 산업, 취락 등 여러 가지 사물과 현상 중 인간의 삶과 관련된 여러 가지 양상들을 포함한다.

[자연환경]

안동시는 경상북도 북부 중앙에 있는 지역으로 동쪽으로 영양군과 청송군, 서쪽으로 예천군, 남쪽으로 의성군, 북쪽으로 영주시·봉화군과 이웃하고 있다. 태백산맥이 줄기차게 뻗어 그 지맥을 이루고, 낙동강은 북에서 남으로 흐르다가 시가지 동쪽에서 반변천과 합류하여 서쪽으로 흐른다.

서남쪽은 비교적 평탄하나 동북쪽은 산이 험준하여 농경지는 거의가 산간에 형성되어 있으며, 풍산평야를 제외하고는 평야가 극히 적은 편이다. 토질은 낙동강을 중심으로 강남은 거의가 점토질이고, 강북은 사토질이다. 기온은 연교차가 심하고, 연간 73일 안개가 낀다. 계절풍은 겨울에 북서풍, 여름에 서북서풍이 불며 연평균 기온은 12.1℃이다. 강우량은 연간 1,179.8㎜ 정도인데 6~9월이 820.8㎜로 전체 강우량의 약 69.5%를 차지한다.

[행정구역]

1. 남북국시대

신라 때는 고타야군(古陀耶郡)이라 하였는데 고구려와 이웃하고 있어 한때는 고구려에 속하여 굴화현(屈火縣)으로도 불리었다. 757년(경덕왕 16) 군현제도의 개혁으로 고창군(古昌郡)으로 개칭되었다가 일계군(一界郡), 지평군(地平郡), 화산군(花山郡), 고령군(古寧郡), 고장군(古藏郡), 석릉군(石陵郡) 등으로 이름이 바뀌기도 하였다.

2. 고려시대

고려시대에는 고려의 왕건(王建)과 후백제의 견훤(甄萱)병산(甁山)에서 싸울 때, 고을 성주인 김선평(金宣平)·장길(張吉)·권행(權幸)왕건을 도운 공이 컸으므로 안동부(安東府)로 승격하였다. 995년(성종 14) 길주(吉州), 1197년(명종 27) 안동도호부(安東都護府), 1204년(신종 7) 안동대도호부(安東大都護府), 1308년(충렬왕 34) 복주목(福州牧) 등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1361년(공민왕 10) 공민왕이 홍건적(紅巾賊)의 난을 피하여 이 고장에 머무를 때 고을 백성이 충성을 다해 왕을 받들었으므로 다시 대도호부로 승격하여 인근 17개 군현(郡縣)을 관할하였다.

3. 조선시대~일제강점기

조선시대에는 안동현(安東縣)과 안동대도호부로 부침을 거듭하다가 1895년 전국을 23부로 나눌 때 경상북도 동북부 지역을 관할하는 안동부가 되었고, 1896년 13도로 개편할 때에는 안동군이 되었다. 일제강점기인 1914년 예안군(禮安郡)을 병합 19면으로 개편되었고, 1931년 안동면을 안동읍으로 승격하면서 일부 면을 통폐합하여 1읍 15면 218동으로 개편되었다.

4. 광복 이후~현대

1963년 안동읍이 안동시로 승격하면서 안동군은 15면이 되었고, 1973년 풍산면이 풍산읍으로 승격하였다. 1974년 안동댐 건설로 월곡면(月谷面)이 폐지되었고, 1995년에 안동시와 안동군이 통합되어 1읍 13면 18동이 되었다. 1997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3개 동이 폐지되어 1읍 13면 10동이 되어 현재에 이른다.

[인구]

2011년 6월 30일 현재 총 68,278가구에 169,079명(남자 83,412명, 여자 85,667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데, 2009년 168,866명, 2008년 168,718명으로 매년 약간의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가구 당 인구수는 약 2.5명으로 2008년 2.6명에 비해 감소하였다. 동별로는 신흥 주거지와 상업지로 성장하고 있는 용상동·옥동·태화동에 비교적 많은 가구가 거주하고 있다. 인구 이동의 경우 전입보다 전출이 약간 더 많은 현상을 보이며, 시·군 간 인구 이동보다 시·도 간 인구 이동이 더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출생·사망·혼인의 인구 동태도 모두 감소하고 있다.

[관광]

안동시는 전통문화 관광지의 거점으로 봉정사(鳳停寺), 보물 제58호인 안동 안기동 석불좌상, 국보 제16호인 안동 신세동 칠층전탑, 보물 제115호인 안동 이천동 석불상 등 불교와 관련된 많은 문화재들이 곳곳에 있다. 또한 유교 문화의 요람으로 조선시대의 풍습을 비롯한 다양한 문화유산이 이어져 내려오고 있으며, 특히 조선시대에 우리나라의 추로지향(鄒魯之鄕)이라 불릴 만큼 유교 문화의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다.

안동댐임하댐이 준공됨에 따라 드넓은 호수와 관련된 관광 자원도 개발되어 관광 도시로 활기를 띠고 있다. 안동댐 남쪽의 영남산 기슭에 안동민속촌을 건립하고 수몰 지역의 문화재를 이전하여 보존하고 있고, 민속촌 주변에는 83,000여 그루의 꽃나무를 심은 아름다운 용성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민속촌 앞에는 안동 출신의 민족시인 이육사의 기념시비가 서 있다. 또한 국가무형문화재 제24호로 지정된 안동차전놀이,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제7호로 지정된 안동놋다리밟기를 비롯한 다양한 민속놀이도 전승되고 있다.

[산업과 교통]

주요 산업은 농업과 상업이다. 낙동강 유역을 중심으로 벼농사가 이루어지며, 과일과 채소도 많이 재배된다. 토지가 비옥하고 발달한 영농법이 보급되어 단위 생산량이 많다. 총 경지 면적 15.98㎢ 가운데 논은 6.15㎢, 밭은 9.83㎢로 논보다 밭이 많다. 특산물로 안동소주가 유명하다. 공업은 부진하여 섬유 부문을 중심으로 소규모의 공장들이 들어서 있을 뿐이다.

안동 지역은 일찍부터 경상도 북부 지방의 상업 중심지로 발달하였다.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와 『경상도읍지(慶尙道邑誌)』에 따르면, 1830년대 안동에는 부내장과 신당장(新塘場) 등의 5일 정기장이 섰으며, 1909년에는 2일과 7일에 개장하는 부내장이 크게 번성하여 농산물·소·생선·안동포·안동소주 등이 활발히 거래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1960년대에 들어와서 안동이 시로 승격하고 재래시장의 현대화가 이루어지면서 상설 점포들이 늘어나 정기장은 점차 기능이 쇠퇴하였다. 교통은 비교적 좋은 편으로, 중앙고속도로·중앙선·국도 5호선이 남북 방향으로 지나고, 국도 34호선이 동서 방향, 국도 35호선이 동남-서북 방향으로 통과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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