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400443 |
---|---|
한자 | 耕學社 |
영어음역 | Gyeonghaksa |
영어의미역 | Gyeonghaksa Self-governing Body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강윤정 |
[정의]
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안동 지역 출신의 망명자들이 중국에 건설한 한인 자치 단체.
[설립목적]
경학사는 서간도로 망명하는 한인들의 생활 기반을 안정시키고, 한인 청년들을 구국 인재로 육성하여 독립군 기지를 건설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변천]
경학사는 신민회 회원들과 안동 지역의 망명 인사들이 독립군 기지 건설을 위해 1911년 4월 중국 길림성 유하현(柳河縣) 삼원포(三源浦) 대고산(大孤山)에서 결성된 한인 자치 단체이다. 노천군중대회를 통해 3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조직되었으며 조직 단계에서부터 안동 출신 망명가들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대표인 사장으로 안동 출신 이상룡(李相龍)이 취임했으며 류인식(柳寅植)이 교육부장을 맡았으며, 김동삼(金東三)이 조직과 선전을 담당하였다. 이 외에도 서울 출신 이회영이 내무부장, 이동녕이 재무부장, 장유순이 농무부장을 각각 맡았다. 이후 1913년경 경학사는 해체되었으며, 그 후속 조직으로 부민단(扶民團)이 결성되었다.
[활동사항]
주요 활동으로는 독립군 기지 건설을 위한 동포 사회의 형성에 주안점을 두었다. 때문에 경작을 통해 민생을, 교육을 통해 구국 인물을 길러내는 활동을 전개하였다. 후일 신흥무관학교로 불리는 신흥강습소가 탄생한 것도 바로 이러한 배경이 자리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경학사는 서간도 지역의 최초의 한인 자치 단체로서 비록 2년도 안되어 해체되었지만 한인 사회를 건설하고 민족 교육을 통한 인재를 육성하여 독립운동의 인적 기반을 만들고자 한 근본정신은 이후 부민단과 한족회로 계승 발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