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농암영정후사본및금서대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400708
한자 聾巖影幀後寫本-金犀帶
영어공식명칭 Relics of Yi Hyeonbo
영어음역 Nongam Yeongjeong Husabon Mit Geumseodae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물/유물(일반)
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220[퇴계로 1997]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정진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1994년 11월 2일연표보기 - 농암영정후사본및금서대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63호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농암영정후사본및금서대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재지정
성격 초상화|유물
제작시기/일시 1827년연표보기
제작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
너비 금서대 3.5㎝
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소장처 주소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220[퇴계로 1997]지도보기
소유자 이성원
문화재 지정번호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정의]

경상북도 안동시 한국국학진흥원에 있는 이현보의 영정 사본과 관복띠.

[개설]

농암(聾巖) 이현보(李賢輔, 1467~1555)는 영천인으로, 1498년(연산군 4) 문과에 급제하여 안동부사, 경상도관찰사, 형조참판 등을 역임하였다. 1542년(중종 37) 지중추부사에 제수되었으나 사양하고 고향인 예안으로 낙향하여 89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자연을 벗하여 시를 짓고 제자를 가르치며 여생을 보냈다.

농암 영정 후사본은 이현보가 경상도관찰사에 재직 중인 1536년(중종 31) 동화사의 옥준상인(玉埈上人)이라는 승려가 그렸다고 전하는 보물 제872호 「농암 이현보 영정」을 그대로 옮겨 그린 모사본(模寫本)이다. 모사본에는 「영정개모시일기(影幀改模時日記)」가 전하고 있다. 이 기록에 의하면 1827년 후손들이 영정의 부식을 염려하여 모사해 둔 것으로서, 당시 추사 김정희(金正喜, 1786~1857)의 천거로 소당(小塘) 이재관(李在寬, 1783~1837)이 예안의 분강서원까지 내려와 그렸다고 한다.

1974년 12월 10일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63호로 처음 지정되었다가 1994년 11월 2일 ‘농암영정후사본및금서대’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그동안 분강서원에 소장되어 있다가 2004년 한국국학진흥원에 기탁되었다. 2009년 현재 이성원이 소유하고 있으며, 한국국학진흥원에서 관리하고 있다.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상북도 유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형태]

농암 영정 후사본은 허리에 금서대를 두른 이현보가 서안(書案) 앞에 앉아 있는 모습을 그린 초상화이다. 규격은 가로 105㎝, 세로 126㎝이다. 농암 영정 후사본은 원본과 같은 규격으로서, 원본을 가감 없이 정확하게 모사하고자 하였던 것으로 보이나, 부분적으로는 변형된 모습도 보인다.

원본과의 차이점 중 가장 두드러진 것은 서안 위에 펼쳐 놓은 서책의 표현으로서, 원본에는 입체감이 없는 반듯한 평행사변형이나 후사본에서는 책에 부피감을 주기 위해 자연스럽게 펼쳐 놓아 표현이 입체적이다. 유물 중 금서대는 이현보가 관직에 있을 때 사용하던 관복띠로, 폭 3.5㎝의 가죽 바탕에 비단을 바르고 무소뿔과 금속 등으로 장식한 것이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