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40087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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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安東水雲亭 |
영어음역 | Andong Soounjeong |
영어의미역 | Andong Soounjeong Pavilion |
분야 |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태자리 567[태자로 172-7]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정진영 |
문화재 지정 일시 | 2002년 10월 14일 - 안동수운정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433호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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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안동수운정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재지정 |
성격 | 누정 |
건립시기/일시 | 1681년 |
정면칸수 | 4칸 |
측면칸수 | 1칸 |
소재지 주소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태자리 567[태자로 172-7] |
소유자 | 봉화금씨 매헌공파 문중 |
문화재 지정번호 |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
[정의]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태자리에 있는 조선 후기 정자.
[개설]
안동수운정은 조선 선조(宣祖) 때의 학자 매헌(梅軒) 금보(琴輔, 1521~1585)가 60세에 지은 정자이다. 지금의 건물은 1933년 문중에서 금보의 학덕을 기리기 위하여 중수한 것이다. ‘수운정’이란 이름은 매헌(梅軒) 금보가 자연 속에서 물과 구름을 벗하며 사우(士友)들과 학문을 논하고 후학을 양성하고자 하는 뜻으로 명명하였다 한다. 매헌 금보의 본관은 봉화(奉化)이다.
금보는 1546년(명종 1) 사마시에 합격한 후 낙향하여 성리학에 뜻을 두고 이황(李滉)에게 수학하였다. 글씨에 뛰어나 이숙량(李叔樑), 오수영(吳守盈)과 더불어 삼절(三絶)이라 불렸으며, 퇴계묘비(退溪墓碑), 도산신판(陶山神版) 등은 그의 작품이다. 저서로는 『사서질의(四書質疑)』, 『심근강의(心近講義)』, 『가선휘편(嘉善彙編)』, 『사례정변(四禮正變)』, 『사례기문(四禮記文)』 등이 있었으나 병화에 모두 소실되었고, 다만 『매헌집(梅軒集)』 1질만 전한다.
[위치]
안동시 도산면 태자리에 송림이 병풍처럼 줄지어 서 있는 태자산(太子山)을 등지고 남서향으로 앉아 있다. 안동수운정이 자리한 곳은 원래 신라 때 창건한 태자사(太子寺)가 있던 곳이다. 현재 안동수운정 앞쪽 밭에는 신라시대 때 쌓은 석축 일부가 남아 있으며, 오른쪽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는 태자사지 귀부 및 이수(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68호)가 있다.
[형태]
건물은 정면 4칸, 측면 1칸 반 규모의 ‘一’자형 집이다. 가운데에 2칸짜리 대청을 놓았고, 그 좌우에 온돌방을 두었다. 양측 온돌방 뒷벽에는 벽장이 시설되어 있고, 정면과 오른쪽 면에는 쪽마루가 깔려 있다. 대청 앞면에는 4분합 굽널띠살 들문을 달았고, 배면에는 판벽을 치고 널문을 달았다. 온돌방 앞면에는 쌍여닫이 띠살창을, 측면에는 외여닫이 띠살문을 내었고, 상부 벽체의 모서리 높은 곳에 조그마한 미들기 환기창을 내었다.
온돌방 천장은 고미반자로 꾸미고, 벽장을 아래위로 양분하여 각기 두 짝 여닫이문을 달았다. 사괴석 바른층쌓기를 한 기단 위에 막돌 초석을 놓았고, 네모기둥을 세운 홑처마 팔작지붕집이다. 상부 가구는 5량가이다. 지붕 용마루 양단에는 화판형 망와를 얹었고, 합각벽에는 와편으로 꽃병 모양 장식을 하였으며, 그 위에 지네철을 박았다.
[의의와 평가]
1933년에 중수하였으나 그 당시의 건축물 특징으로 들 수 있는 영롱쌓기, 유리 창문, 고창 등의 모습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따라서 중수 때에도 이전의 건축 양식을 그대로 따랐던 것으로 보인다. 2002년 10월 14일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433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상북도 문화재자료로 재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