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40098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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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韓山李氏大山宗家 |
영어음역 | Hansanissi Daesan Jongga |
영어의미역 | Daesan Head Residence of Hansan Yi Clan |
분야 |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 망호리 537[일직점곡로 11-12]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정진영 |
문화재 지정 일시 | 2001년 11월 1일 - 한산이씨대산종가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408호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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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한산이씨대산종가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재지정 |
성격 | 고가 |
양식 | 팔작지붕|박공지붕 |
건립시기/일시 | 1930년대 |
정면칸수 | 5칸(정침)|3칸(사당) |
측면칸수 | 5칸(정침)|1칸(사당) |
소재지 주소 | 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 망호리 537[일직점곡로 11-12] |
소유자 | 이방수 |
문화재 지정번호 |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
[정의]
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 망호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가옥.
[개설]
한산이씨대산종가는 이상정(李象靖, 1711~1781)이 태어난 집으로, 후에 이상정의 8세손인 이용원(李龍遠, 1915~1959)이 규모를 조금 줄여 새로 건립하였다. 이상정은 조선 정조(正祖, 1752~1800) 때의 학자로 자는 경문(景文), 호는 대산(大山)이다. 밀암(密庵) 이재(李栽)의 문인으로 벼슬은 형조참의에 이르렀다. 퇴계(退溪) 이황(李滉, 1501~1570)의 계통을 이어 많은 학자를 길러 냈으며, 저서에 『약중편제(約中編制)』, 『양경재집(養敬齋集)』 등이 있다.
[위치]
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 망호리 537번지[일직점곡로 11-12] 마을 안쪽에 서향하고 있다.
[변천]
한산이씨대산종가는 원래 큰 규모의 집이었으나 일제강점기에 3년가량 집을 비워 두어 퇴락하자 이상정의 8세손인 이용원이 1930년대에 규모를 조금 줄여 새로 건립하였다.
[형태]
정침은 정면 5칸, 측면 5칸의 완전 ‘ㅁ’자형 건물이다. 정면의 가운데 칸에 중문간을 두고, 우측에 사랑방 2칸통을 앉혔으며 좌측에는 광 2칸을 배열하였다. 사랑 공간은 정면에 툇마루를 앞마당 쪽으로 돌출하여 시설하고 다른 공간보다 높은 팔작지붕을 얹어 사랑 공간의 위용을 드러내게 하였다. 사랑 공간에 사랑 대청을 두는 것이 전형적인 모습인데, 한산이씨대산종가는 툇마루를 넓게 하여 사랑 대청을 대신하도록 하였다. 툇마루 전면에는 계자각(鷄子脚) 난간이 설치되어 있고, 우측면으로는 쪽마루가 시설되어 있다.
안채는 중문간에 들어서면 안마당 건너에 앉아 있다. 안방 좌측에는 1칸 식방(食房)과 1.5칸 부엌, 그리고 1칸 창고와 반 칸 통래간이 뻗어 좌익사(左翼舍)를 이루고 있으며, 안대청 우측에는 중사랑방 1칸과 빈소방 2칸, 그리고 통래간 1칸이 연이어져 우익사(右翼舍)를 이루고 있다. 중사랑방은 이상정이 출생한 방이라 하여 ‘태실(胎室)’이라 부르며, 빈소방은 제례 때 사용하는 방이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이 부분이 여성의 공간으로 사용되는 것과는 다른 모습이다. 안채의 배면과 우익사 주위에 동선의 편의를 도모하기 위한 쪽마루를 비교적 많이 깔아 놓았다.
한산이씨대산종가는 정면의 중문간 외에 우측면에도 출입문을 두었는데, 문얼굴이 우측면의 것이 훨씬 크고 높아 주 출입구임을 알 수 있으며 현재도 이 문을 주로 이용하고 있다. 1900년대 이후부터 주 출입구가 측면으로 옮겨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는데, 한산이씨대산종가는 이전 시기의 중문간 수법을 준용한 과도기적 유형에 속한다.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1칸 규모의 박공지붕집이다.
[현황]
2001년 11월 1일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408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상북도 문화재자료로 재지정되었다. 2009년 현재 소유자 및 관리자는 이방수이다.
[의의와 평가]
한산이씨대산종가는 이전에 존재하였던 종택을 본보기로 삼아 1930년대에 건립한 근세 한옥으로, 드물게 전통 양식에 따라 건립하여 보존할 가치가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