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4010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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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河回別神- |
영어음역 | Hahoebyeolsinguttallori |
영어의미역 | Hahoe Mask Dance Drama|Communal Shamanistic Rite |
이칭/별칭 | 하회탈춤 |
분야 |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무형 유산 |
유형 | 놀이/놀이 |
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 |
집필자 | 한양명 |
[정의]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에서 전해 내려오는 민속 가면극.
[개설]
하회별신굿탈놀이는 약 500년 전부터 음력 정초마다 동민들의 무병과 안녕을 위하여 마을의 서낭신[城隍神]에게 제사지낸 동제였다. 이때 신의(神意)를 기쁘게 하고자 부락 사람들이 광대와 악공이 되어 이 가면극을 연희(演戱)하였다. 하회리의 서낭신은 여신으로써 ‘무진생 성황님’이라고 불리는 17세의 의성김씨 처녀로 알려져 있다. 성황제는 동제인 평상제와 5년 또는 10년마다 행하는 부정기적인 별신굿이 있다.
하회별신굿탈놀이는 1928년[戊辰年]에 마지막으로 연행되었는데, 그 해가 서낭신의 갑년(甲年)이었다. 즉 별신굿은 서낭신에 대한 대제(大祭)이며, 탈놀이는 별신굿의 부분인 오신(娛神) 행위에 해당한다. “이 별신굿을 보지 못하면 죽어서 좋은 데를 가지 못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유명해서 무진년의 별신굿은 인근 마을에 거주하는 많은 사람들까지 몰려와 구경하였다고 한다. 탈놀이의 춤은 즉흥적이어서 남성의 경우 경상북도 북부지방의 특유한 ‘몽두리춤’을 추었으며, 여성의 경우는 오금을 비비는 ‘오금춤’을 추었고, 농악은 세마치장단만 친다.
[연원]
하회탈의 유래는 허도령전설과 함께 전한다. 하회탈의 제작 시기는 고려 중엽인 12세기 경으로 추정된다. 당시 하회마을엔 허씨들이 모여 살았다고 한다. 그때 마을에 재앙이 들었는데 허도령이라는 사람의 꿈에 신이 나타나 “탈을 12개 만들어서 그것을 쓰고 굿을 하면 재앙이 물러갈 것이라.”고 계시를 하며, “탈이 다 만들어 질 때까지 누구도 들여다보게 해서는 안 된다.”는 금기까지 일러주었다.
현몽을 한 허도령은 이때부터 목욕재개하고 문밖에 금줄을 치고 방문을 걸어 잠근 채 두문불출하며 오랜 동안 탈 제작에 몰두하였다. 어느 날, 허도령을 사모하던 처녀가 허도령이 하도 그리워 금줄을 넘어 탈을 만드는 방의 문에 구멍을 뚫고 들여다보았다. “누구도 들여다보게 해서는 안 된다.”는 신의 금기가 깨어지는 순간 허도령은 그 자리에서 피를 토하면서 죽었다. 마지막으로 만들던 이매탈은 턱을 완성하지 못한 채 허도령이 죽었으므로 지금까지 턱이 없는 채 전해져 오고 있다고 한다.
[놀이도구]
하회탈은 양반·선비·중·할미·초랭이·백정·이매·각시·부네 등 9개와 주지 2개이다. 탈의 뒤쪽은 검은 천이 꿰매져 있어서 덮어쓰기에 편리하다. 탈은 평소에 동사의 다락에 보관하지만, 별신굿을 행할 때는 섬에 넣어서 ‘청광대’가 관리한다. 섣달 그믐날이 되면 광대들은 서낭당[城隍堂]에 다녀온 후 ‘큰광대’가 “술령수!”하고 외치면 모든 광대들이 “우우!”하고는 탈을 쓴다. 마을 주민들은 별신굿을 할 때 이외에는 탈을 볼 수 없다. 부득이하게 보아야 할 경우에는 신에게 고하고 난 후 보아야 한다고 인식하고 있다.
[놀이방법]
섣달 보름의 산주 기도에서 서낭신의 계시가 내리면 마을에 널리 알리고, 섣달 그믐날부터 본격적으로 별신굿 준비를 한다. 산주는 부정이 없는 사람을 시켜서 서낭대를 다듬게 하고, 마을 사람들은 모두 육식을 금하며 말과 행동을 삼간다. 유사들은 제기(祭器)를 새로 구입하고 제수를 마련한다. 섣달 29일에 마을 대표들이 동사에 모여서 부정이 없는 각성바지들 가운데서 탈춤을 출 광대들을 지명하면 산주와 함께 그믐날부터 동제의 파젯날인 정월 보름까지 동사에 합숙을 하며 근신한다.
따라서 광대로 뽑힌 사람들은 설날 차례에도 참석하지 못한다. 물론 동사에는 금줄을 치고 황토를 뿌려서 잡인의 출입을 금하고 부정이 타지 않도록 한다. 하회별신굿탈놀이는 강신(降神) → 무동(舞童)마당 → 주지마당 → 백정마당 → 할미마당 → 파계승마당 → 양반·선비마당 → 당제(堂祭) → 혼례마당 → 신방마당 등 10개 마당의 순으로 이루어진다.
1. 강신
그믐날 아침에 내림대를 든 산주와 서낭대를 멘 대광대 및 각종 탈광대들이 풍물을 치며 화산 중턱의 서낭당에 올라가서 신내림을 받는다. 광대들이 풍물을 치는 동안 각시는 무동춤을 추며 서낭대를 도는데, 산주가 당 안에 들어가서 신내림을 빌기 시작하면 풍물은 멈춘다. 비손을 하여 내림대가 흔들리고 당방울이 흔들리면 신내림이 이루어진 것이다.
2. 무동마당
내림대의 방울을 서낭대에 매달고 대광대들이 앞장을 서서 하산을 하면 각시광대는 무동을 타고 춤을 춘다. 행렬은 국신당을 거쳐 삼신당에 참례를 하고 동사로 와서 서낭대를 세우고 이때부터 탈춤을 추며 합숙에 들어간다. 섣달 그믐날이 아닌 정월 초이튿날에 신내림을 해왔다는 보고도 있어 일정하지는 않다. 동사에 이르면 풍물이 계속되는 가운데 각시는 무동춤을 추면서 구경꾼들에게 걸립을 하며, 다른 광대들은 탈을 받아쓰고서 탈놀이 준비를 한다.
3. 주지마당
준비가 끝나면 제일 먼저 주지마당이 시작된다. 신이한 동물인 주지 두 마리가 나와서 싸움굿을 하면서 탈마당의 부정을 정화시키는 구실을 한다.
4. 백정마당
다음은 백정이 나와서 도끼를 휘두르며 소잡이춤을 춘다. 소가 나타나면 도끼로 머리를 때려 소를 쓰러뜨리고 칼을 꺼내서 칼춤을 춘 다음에 소의 배를 갈라서 내장과 소불알을 꺼내 들고 구경꾼들 앞에 가서 ‘우랑을 사라’고 외친다. 처음에는 상스럽다는 듯이 외면하던 양반과 선비가 양기에 아주 좋다는 백정의 말을 듣고는 서로 사겠다고 다툰다. 이것은 생산력을 확보하고자 하는 주술적 의기도 갈무리되어 있지만, 극적 의미로서 미천한 신분의 백정이 성을 상징하는 우랑을 사라고하는 것은 기존 질서와 유교적 도덕률을 함께 뒤집어엎는 풍자적 성격을 지닌다.
5. 할미마당
이어서 쪽박을 허리에 찬 할미가 등장하여 베를 짜는 시늉과 함께 신세타령을 하면서 영감과 청어 먹은 것을 두고서 다툼을 벌인다. 할미의 베짜기와 신세타령 및 차림새를 통해서 여성들의 고난을 보여 주는 동시에 청어를 일방적으로 독식한 할미의 대응 방식을 통하여 가부장적 권위를 파괴하고 남녀 간의 상하 관계를 뒤집어 버림으로써 남성 중심의 사회 질서에 저항하는 몸짓을 한다. 여성이 청어를 먹는다는 것은 잉태를 상징하는 풍요 다산의 주술적 의미로도 받아들일 수 있으니, 극적 의미로는 가부장적 권위에 대한 적극적 비판 의식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6. 파계승마당
할미마당이 끝나면 중마당이 시작된다. 부네라고 하는 바람둥이 여성이 오줌 누는 것을 우연히 보게 된 중이 부네의 오줌 냄새를 맡고 마음이 동하여 갈등한다. 그러다가 중의 삶을 버리고 부네와 어울려 본성적인 남녀 관계를 맺게 된다. 중이 추구하는 관념적 세계관의 허위를 풍자하면서 민중적 삶의 실상을 긍정하는 뜻이 담겨 있다고 하겠다.
7. 양반·선비마당
이 마당에서는 초랭이와 이매의 부추김에 의해 양반과 선비가 부네를 두고 서로 싸움을 벌인다. 결국 이들이 자랑하는 지체와 학식이라는 것은 순전히 얼토당토 않는 말장난에 불과한 것임을 폭로함으로써 관중들로부터 조롱의 대상이 되게 한다. 즉, 당시 지배층들의 사회적 근거를 부정해 버림으로써 탈놀이의 전승 주체인 민중들의 삶을 긍정하는 구실을 한다.
8. 당제
지금까지 구경한 여러 탈놀이들은 별신굿을 하는 동안 동사 앞마당이나 마을 안의 여러 집에서 몇 차례씩 거듭 놀이된다. 그러다가 정월 보름날 당제를 지내고 나서 하산하면 별신굿이 거의 마무리되는 셈이다. 광대들도 탈을 돌려주고 집으로 돌아간다. 이때는 합숙도 끝난다. 다만 유사와 청광대 한 사람, 그리고 양반광대 및 각시광대만 남아서 혼례마당을 준비한다.
9. 혼례마당
양반광대가 홀기를 부르고, 각시광대는 신부가 되며, 청광대는 신랑이 되어 혼례식을 올린다. 17세 처녀로 죽은 서낭신을 위로하기 위한 마당이라고 한다. 혼례식을 올릴 때 자리를 제공하면 복을 받는다고 하여 마을 사람들이 다투어 자리를 내어 놓는다.
10. 신방마당
혼례식이 끝나면 신랑·신부가 첫날밤 잠자리를 하면서 모의적인 성행위를 한다. 자식을 낳지 못하는 부부는 신방마당을 치를 때 쓴 자리를 깔고 자면 자식을 낳을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유감주술적 인식의 하나라 보겠다. 신방마당이 끝나면 마을 입구 헛천에서 헛천거리굿을 한다. 이때는 무당이 중심이 되어, 별신을 하는 동안 묻어 들어온 잡귀 잡신들을 쫓아버린다. 별신굿의 마무리로 거리굿을 하는 셈이다. 광대들과 함께 한판 풍물을 크게 논다.
[생활민속적 관련사항]
하회별신굿탈놀이는 순전히 굿으로서 주술적 성격을 지닌 동시에, 탈춤이라고 하는 가면극으로서의 예술적 성격을 지니기도 한다. 굿으로서의 형식을 보면 처음에는 주지마당에서 부정굿을 하여 굿판을 정화하고, 여러 거리의 마당굿들을 다양하게 한 다음 서낭신에게 제사를 올린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잡귀 잡신들을 배송(拜送)하는 거리굿으로 마무리를 한다는 점에서 동해안의 별신굿과 비슷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굿의 내용은 부정굿이나 거리굿과 같은 상투적인 것 말고도 유감주술의 하나인 성행위굿을 하는 것이 있다. 그러면서 반상 및 남녀의 차별 관념과 학식 및 지체의 상하 관계 속에서 공고하게 다져진 사회 질서를 허구적으로 뒤집어 버림으로써 극적인 해방감을 만끽하는 동시에 민중적 대동 세계의 가능성을 전망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탈놀이 속에는 주술적 기대의 전망과 예술적 표현의 즐김이 하나로 통일되어 갈무리되어 있다고 하겠다.
[현황]
하회별신굿탈놀이는 3월부터 11월까지 안동 하회마을 입구에 위치한 하회별신굿탈놀이 전수회관에서 상설공연을 한다. 3월, 4월, 11월은 매주 일요일 오후 3시부터 4시까지, 5월~10월은 매주 토·일요일 오후3시부터 4시까지 공연한다. 그리고 매년 한 차례 적당한 시기에 정기공연이 열리며,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 기간에는 일정에 따라 여러 차례 공연한다. 1980년 11월 17일 국가무형문화재 제69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국가무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