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401085 |
---|---|
한자 | 朱書講錄刊補 |
영어음역 | Juseogangnokganbo |
영어의미역 | New Edition Transcript of Lectures of Zhu Zi's Correspondence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안병걸 |
성격 | 주자 강의록 |
---|---|
관련인물 | 이재(李栽, 1657~1730)|이황(李滉, 1501~1570) |
편자 | 이재(李栽, 1657~1730) |
저술연도/일시 | 1713년 |
편찬연도/일시 | 1721년 |
간행연도/일시 | 1785년 |
권수 | 6권 |
책수 | 3책 |
사용활자 | 목판본 |
가로 | 20.8㎝ |
세로 | 30.1㎝ |
표제 | 朱書講錄刊補 |
간행처 | 호계서원 |
소장처 | 안동대학교도서관 |
소장처 주소 | 경상북도 안동시 송천동 388[경동로 1375] |
[정의]
조선 후기 안동 출신 학자 이재가 이덕홍 등 이황의 문인들이 편찬한 『주자서강록』을 수정 증보한 책.
[편찬/발간경위]
『주서강록간보(朱書講錄刊補)』의 편찬은 16세기의 거유 퇴계 이황(李滉, 1501~1570)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이황은 주자의 저술 가운데 서간문을 매우 중시하였다. 그러나 그 분량이 많으므로 이를 요약하여 만든 것이 『주자서절요』이다. 이황은 또한 제자들에게도 자주 주자의 서간문을 강의하였는데, 이때 제자들이 만든 강의록이 『주자서강록』이다.
당시 안동 지역에는 이덕홍 등 이황의 제자들이 정리한 강록이 여러 있었는데, 이들 강록은 이황의 검증을 거치지 않았음은 물론이고, 베껴서 돌려보는 과정에서 오류가 제법 있었다. 부친 이현일을 통하여 이황의 학문을 전수받은 이재는 이에 착안하여 여러 종류의 강록을 수집한 뒤, 퇴계의 『주자서절요』와 『퇴계집』, 『주자대전』 등을 참고하여 그 문제점을 정리하여, 오류는 잘라내고 해설이 미흡한 것은 보충하여 『주서강록간보』를 만들었다고 한다.
[서지적 상황]
6권 3책이며, 목판본이다. 표제는 주서강록간보(朱書講錄刊補)이다. 계선 형태는 이어진 계선이다. 어미는 상하내향이엽화문어미(上下內向二葉花紋魚尾), 광곽은 사주쌍변(四周雙邊)이다. 크기는 가로 20.8㎝, 세로 30.1㎝이다. 행수는 10행, 한 행의 자수는 22자, 주석은 쌍행이다.
[구성/내용]
차례는 퇴계의 『주자서절요』와 동일하다. 이덕홍 등이 기술한 훈석은 대부분 제외했고, 설명이 필요할 때에는 ‘안(按)’ 자를 써서 이재 자신의 의견을 부기하였다. 자구의 해석과 함께 인명과 지명, 서찰의 왕래 시기에 대한 보충 설명이 많다. 의문이 있으나 단정할 수 없는 부분은 ‘의(疑)’ 자를 써서 신중하게 처리하였다. 이외에 주자의 원문을 참고할 필요가 있을 경우에는 ‘취고대전(就攷大全)’이라고 표기하였다. 권말에 1721년에 쓴 권두경(權斗經)의 발문이 있고, 부록에는 이재의 외손자인 이상정(李象靖)이 문인들과 교정할 때의 기록인 「남연회교록후지(南淵會校錄後識)」가 있다.
[의의와 평가]
안동의 퇴계학은 17세기 후반 이현일을 통하여 크게 부흥하였다. 이현일의 아들인 이재는 부친의 학문을 이어 평생토록 퇴계학의 천양에 힘썼다. 『주서강록간보』는 이황이 중시하였던 주자서의 강록를 통하여 18세기 이후 안동 퇴계학파의 주자 연구의 심도를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