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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401455
한자 李埦
영어음역 Yi Wan
이칭/별칭 치도(致道),간암(艮巖)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 망호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배종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출신지 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 망호리 지도보기
성별
생년 1740년연표보기
몰년 1789년연표보기
본관 한산
대표관직 홍문관부교리

[정의]

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치도(致道), 호는 간암(艮巖). 아버지는 퇴계학맥의 주요 전수자인 대산(大山) 이상정(李象靖), 어머니는 장수황씨(長水黃氏)이다.

[활동사항]

이완은 경상도 안동부(安東府) 일직현(一直縣) 소호리(蘇湖里, 현 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 망호리)에서 태어났다. 1771(영조 47) 사마시에 합격하였고, 1774년 문과에 급제하였다. 1777년(정조 1) 후릉별검(厚陵別檢)에 임명되었으나 이미 관직에 뜻이 없었고 또 부친이 연로하였기에 부임하려 하지 않았지만 아버지의 권유로 억지로 부임하여 몇 달 만에 사직하고 돌아왔다. 1786년 6품으로 승진하고 곧이어 지평이 되었다.

1789년에는 정조가 아버지 이상정의 학덕을 추념하여 이완을 홍문관부교리에 임명하였다. 그 뒤 표문을 제대로 짓지 못하는 급제자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대신들과의 마찰로 벼슬을 버리고 돌아왔다. 정조가 여러 차례 불렀지만 부임하지 않아서 결국 옥에 갇히기까지 했다. 그 뒤 서학교수(西學敎授)에 임명되었으며 현릉(顯陵)과 융릉(隆陵)을 조성할 때 왕을 호종하면서 노숙하다가 병이 들어 향년 50세로 세상을 떠났다.

[학문과 사상]

이완이상정의 장자로서 아버지의 문하에서 여러 제현들과 교유하였다. 그 중에 동암(東巖) 류장원(柳長源), 천사(川沙) 김종덕(金宗德), 후산(后山) 이종수(李宗洙)와 교유하며 의리를 분별함에 정밀하게 하도록 노력하였다. 학문하는 태도에 있어서는 아버지나 스승의 말씀이라고 곧바로 따르지 않았고 때때로 경전의 해석에 있어서는 이견을 나타냈다. 예를 들면, 이완은 『논어(論語)』 학이장(學而章)의 본체는 지행(知行)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인륜(人倫)·독의(篤義)의 일과 성신(誠身)·근행(謹行)의 도를 밝힌 것이니 마땅히 상량(商量)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였다.

[저술 및 작품]

문집으로는 『간암집(艮巖集)』 9권 5책이 있으며, 이상정의 평소 언행과 선조의 공덕을 드러낼 수 있는 자료를 모아 『통모록(痛慕錄)』을 지었다.

[묘소]

묘소는 군위현(軍威縣) 서쪽 모로동(毛老洞) 묘좌(卯坐)의 언덕에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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