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40176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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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衡國 |
영어음역 | Yi Hyeongguk |
이칭/별칭 | 시윤(時尹),창해(滄海)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도곡리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류현정 |
성격 | 독립운동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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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도곡리 |
성별 | 남 |
생년 | 1883년 |
몰년 | 1931년 |
본관 | 고성 |
[정의]
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본관은 고성(固城). 자는 시윤(時尹), 호는 창해(滄海)이다. 아버지는 1919년 3월 안동에서 단독으로 만세시위를 벌였던 이상동(李相東)이다. 임시정부의 초대 국무령을 지낸 석주 이상룡(李相龍)의 조카로, 1883년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도곡리에서 태어났다.
[활동사항]
이형국은 한일병합이 이루어지자 1911년 1월 무렵 백부(伯父) 이상룡과 함께 고향인 안동을 떠나 만주로 망명을 하였다. 이형국은 그곳에서 신흥강습소를 수료하고, 독립운동기지인 경학사(耕學社)를 조직하는 데 참여하였다. 1913년 경학사의 운영자금을 조달하기 위하여 국내로 들어온 이형국은 경기도와 충청도, 경상도 일대를 중심으로 군자금을 모집하다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1915년 9월 20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7월형을 언도 받고 옥고를 치른 이형국은 다시 만주로 건너가 이상룡과 허혁, 김동삼 등이 조직한 부민단에 들어가 활동하였다. 1919년 3월에는 이상룡, 김동삼, 김규식 등이 만주 한인사회의 자치기구인 한족회를 조직하자 여기에 참여하여 항일 투쟁을 전개하였다. 이후 이형국은 국내로 들어와 신간회 안동지회에 참여하여 항일투쟁을 펼쳤다. 1929년 3월 선전부 총무간사로 선출되었고, 그해 8월에는 교육부장으로 선출되어 활동하였다.
[상훈과 추모]
1968년에 대통령표창을 받았고,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