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402358 |
---|---|
한자 | 琴韶- |
영어의미역 | Chariot Fight in Geumso-ri |
분야 |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무형 유산 |
유형 | 놀이/놀이 |
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금소리 |
집필자 | 남성진 |
[정의]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금소리에서 음력 정월 대보름날에 하던 편싸움 형식의 대동놀이.
[개설]
금소동채싸움은 동서로 편을 갈라 동채에 탄 장수(대장)의 지휘 아래 수백 명의 장정이 상대편의 ‘동채’를 서로 밀어 붙여 상대의 동채를 먼저 땅에 닿게 하여 승패를 겨루는 놀이이다. 이때에 많은 사람들이 참가하여 넓은 들판에서 놀이판을 벌이며, 승부가 쉽게 결정되지 않으면 밤늦게까지 계속하기도 한다. 이 놀이의 승부는 동채가 땅에 닿거나 대장이 떨어지면 결정되는데, 이긴 편은 짚신을 높이 던지고 마을을 돌면서 승리를 자축한다.
[놀이도구 및 장소]
금소동채싸움은 대보름 명절 중에 행해지지만 그 준비는 동채를 제작하는 데 쓸 노란 참나무를 구하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양편의 합의에 의해서 싸움 날이 정해지면 미리 점찍어 둔 나무를 베러 간다. 베어온 나무는 미리 약속된 ‘깨끗한 집’에 보관한다. 적당한 날(보통 싸움 전날)을 잡아 마당이 넓은 집이나 빈 논에서 동채를 만든다. 동채의 크기는 일정한 범위 안에서 기동성과 튼튼함이 적절한 조화를 이루어야 하므로 대개 양편이 동채 크기를 비슷하게 만든다.
금소동채의 가장 큰 특징은 ‘물부리’의 형태에 있다. 안동읍 내(현 안동시 내)의 본동채는 앞부분이 터져 있고 째기동채는 동채의 앞부분이 교차하는 형태로 구성되어 서로 걸고 공중전을 펼치는 것이 용이하다. 이에 비하여 금소동채는 좌측 체목의 끝부분에 물부리가 형성되어 있고 그 측면에 우측 체목이 박혀 있다.
특히 물부리 부분은 끝으로 갈수록 점점 날카롭게 깎여 있어서 전투적 분위기를 느끼게 하며, 상대편 머리꾼이 쉽사리 동채에 접근할 수 없도록 한다. 금소동채싸움은 마을 앞 ‘텃논’에서 한다. 텃논은 마을의 배꼽에 해당되는 부분으로 이곳의 지신을 눌러야 농사가 잘 되고 마을에 탈이 없기 때문에 여기서 하는 것이다.
[놀이방법]
동채가 다 만들어지면 동채를 메고 매미시골 당으로 향한다. 당에 먼저 가서 고하면 싸움에 이긴다고 하여 서두르기도 한다. 고할 때는 간단하게 주포를 차리며 싸움에서 이기게 해달라고 동신(洞神)에게 기원한다. 당고사가 끝나면 동채에 적당한 사람을 태우고 마을을 한 바퀴 돌면서 위용을 과시하는데, 이때 각 마을의 풍물패가 뒤따른다.
머리꾼은 동채싸움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으로서 기골이 장대하고 강기 있는 사람들로 구성된다. 대개 20대 초반~30대 중반의 연령층에서 자원하며, 숫자는 30~40명 정도이나 제한은 없다. 동채가 일단 텃논에 들어가면 대장을 태운 동채를 뒤로 하고 먼저 머리꾼들의 싸움이 시작된다. 양편은 모든 역량을 머리꾼 싸움에 집중시킨다. 이 싸움에서 양편의 전력이 엇비슷해서 앞머리가 거의 동시에 터지면 싸움은 동채 간의 공중전으로 양상이 바뀐다.
양편의 대장은 서로 상대방의 물부리를 자기편 물부리 밑에 넣기 위해 총력을 기울인다. 금소동채싸움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사람은 대장이다. 경험이 풍부한 대장은 수신호와 음성 신호를 통해 민첩하게 동채를 움직여 승리를 실현한다. 승부가 결정되면 이긴 편은 진 편의 동채를 빼앗아 부숴버린다.
[생활민속적 관련사항]
금소동채싸움은 대개 정월 대보름 명절 기간에 행해졌는데 사정에 따라서는 뒤로 미루어지는 경우도 있었다. 동채싸움이 해마다 행해진 것은 아니었다. 줄당기기가 행해지는 해에는 동채싸움을 하지 않고, 동채싸움을 하는 해에는 줄당기기를 하지 않았다. 그러나 놀이의 준비 과정이 줄당기기가 훨씬 더 복잡하고 경비도 만만치 않았으므로 줄당기기에 비해서 동채싸움이 보다 자주 행해진 것으로 보인다. 금소동채싸움은 1940년대까지 행해지다가 현재는 중단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