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40237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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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음역 | Hwasangnori |
영어의미역 | A Kind of Fire Play |
이칭/별칭 | 화상싸움 |
분야 |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무형 유산 |
유형 | 놀이/놀이 |
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저전리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집필자 | 남성진 |
[정의]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저전리에서 단오 전날 밤에 행하던 전통 불놀이.
[개설]
화상놀이는 불이 붙은 화상을 머리 위에서 돌리다가 서로의 화상이 엮이면 잡아당겨 뺏는 것으로, 많이 뺏는 편이 승리하는 놀이이다. 이를 ‘화상싸움’이라고도 한다. 마을 사람들에 의하면 마을에 불이 자주난 이유로 화상싸움을 했다고 한다. 화상싸움에서 ‘화상’이 의미하는 바가 정확히 무엇인지 알 수는 없다. 그러나 주민들은 화상싸움에 이용되는 놀이 도구 자체를 화상이라고 부른다.
[연원]
서후면 저전리 마을의 주산 뒤편에 화기를 머금은 학가산이 삐죽 솟아 있어 늘 화재가 발생하는지라 이를 예방하기 위하여 화상싸움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학가산의 꼭대기가 두 산봉우리 사이를 통해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기 때문에 마을에 불이 자주 났다고 한다. 학가산의 꼭대기가 마을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화마(火魔)가 비춘다.”라고 하였다.
그러던 중 마을에 도사(풍수)가 찾아와 화상싸움을 하면 마을에 불이 나지 않는다는 방책을 알려주었다. 그에 따라 화기를 누르기 위한 화상싸움을 준비하였고, 도사가 전해준 화상싸움 방법을 기술한 책을 바탕으로 처음으로 화상놀이를 시작하였다고 한다.
또 이와 비슷한 유래로 학가산이 담을 넘어 쳐다보듯이 마을을 바라보고 있어 마을에 도둑이 자주 든다고 하여, 도둑이 많이 들지 않도록 하기 위해 화상싸움을 하였다고도 한다. 화상싸움은 1920년대에 처음 시작하여 1951년까지 놀이가 전승되다가 이후 소멸되었다. 그 후 1982년 전국민속문화경연대회에 출전하기 위해 화상놀이를 복원하였다.
[놀이도구 및 장소]
놀이의 도구는 화상, 즉 뽕나무불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뽕나무뿐만 아니라 버드나무·소나무 등의 뿌리도 사용하였다. 이들 나무의 뿌리를 겨울에 캐서 말려 놓았다가 싸우는 당일 혹은 며칠 전에 그 뿌리에 구멍을 뚫고 삼베 줄을 걸어 돌리기 쉽게 만든 뒤에 불을 붙여 놓은 것이 화상이다. 거기에 세 발 정도 되는 새끼줄을 이어서 빙빙 돌리면서 싸운다. 이때 불이 붙은 화상을 머리 위에서 돌리다가 서로의 화상이 엮이면 잡아당겨 뺏는다. 많이 뺏는 편이 승리하는 놀이이다. 싸움의 장소는 마을을 가로지르는 냇가이다.
[놀이방법]
화상놀이는 음력 오월 초나흘, 즉 단오 전날 밤에 마을을 가로지르는 냇가에서 행해진다. 편구성은 ‘정외마’와 ‘거릿마’가 동부가 되고, ‘큰마’와 나머지 지역이 서부가 된다. 놀이는 20세 전후에서 50세에 이르기까지의 건장한 사람들이 주동하며 출전 경험이 많을수록 유리하다. 각 편의 싸움꾼은 30~40명 정도이다.
싸움 당일 저녁이 되면 양편은 싸움 장소인 냇가에 모인 후 불을 피운다. 양편이 합의가 되면 화상에 불을 붙인 뒤 싸움이 시작된다. 양편은 ‘쩍쩍’ 소리를 내며 내를 건너 상대편으로 쳐들어가 상대편과 격돌한다. 초순경이라 달은 흐릿하지만 양편이 내돌리는 화상의 불꽃이 온 하늘을 수놓는다. 적과 마주치면 화상끼리 걸어서 힘껏 당겨 화상을 빼앗는다. 이때 놀이에 직접 참가하지 않는 남녀노소는 자기편을 열심히 응원하며, 아이들은 별도의 싸움판을 만들어서 싸우기도 한다.
워낙 격렬한 싸움이라서 부상자가 속출하였으며, 심지어는 삼밭에 숨어 있는 자를 화상으로 때려 목숨을 잃은 적도 있었다. 화상의 불이 서서히 꺼지면 주위가 어두워져 피아를 구별하기도 어려워서 일대혼전이 일어나는 경우가 허다하였다. 새벽녘이 되어서야 싸움의 기세가 수그러들면 남은 화상의 숫자로 승패를 결정한다. 단옷날이 되면 양편은 언제 싸웠냐는 듯 다시 본래의 생활로 돌아가며, 싸움에서 입은 피해는 묻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