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
충주사고는 1390년(공양왕 2)부터 임진왜란이 일어나는 1592년까지 약 200년 동안 고려의 중요 전적과 조선 전기의 역대 실록 그리고 중요한 서책과 문서를 보관하던 창고의 하나였다. 그러나 1592년 4월 28일 충주 탄금대 전투에서 신립이 패하여 충주시가지가 불탈 때 시가지 내에 있던 충주사고와 그에 보관된 서책들도 사라졌다. 우리나라는 일찍부터 역사를 기록하여...
-
충주는 남한강의 중류에 위치하여 삼국시대부터 수로 운송을 이용한 교통의 요지로 중시되어 온 지방이다. 고려시대에는 전국의 세곡을 저장하는 12조창을 설치하였는데 충주에 설치한 조창이 덕흥창이었다. 고려 후기와 조선 전기에는 덕흥창 이외에 경원창이 설치되어 경상도의 세곡을 받아 경창으로 수송하였다. 1465년(세조 11)에는 금천(현 충주시 중앙탑면 창동리)에 있던 덕흥창...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문신. 본관은 밀양(密陽). 정국군 박위(朴威)의 후손으로 증조할아버지는 효력부위 박성구(朴聖耈)이며, 할아버지는 박필하(朴必夏)이다. 아버지는 통덕랑 박인원(朴仁源)이며 어머니는 남양홍씨이다. 1773년(영조 49) 문과에 병과 11위로 급제하였다. 1775년 자여도(自如道) 찰방이 되어 업무를 수행하다 역호(驛戶) 권치문(權致文)을 죽여 귀양을...
-
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무신. 본관은 밀양(密陽). 정국군 박위(朴威)의 후손으로 증조부는 박윤정(朴允貞)이고, 조부는 박응규(朴應奎)이며, 아버지는 박대현(朴大顯)이다. 어머니는 안동권씨이다. 1620년(광해군 12) 무과 병과 제1,724인으로 급제하였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남한산성에 들어가 싸우다 전사하였다. 처음 남한산성에 들어갔을 때부터...
-
조선 말기와 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밀양(密陽). 할아버지는 이조판서 문정공(文貞公) 박승휘(朴承輝)이며, 아버지는 공조참의 박세병(朴世秉)이고 어머니는 광주이씨(廣州李氏)이다. 박용대는 1865년(고종 2) 진사에 합격하고 1869년 정시문과에 급제하여 주서(書)에 제수되었다. 1871년 홍문관부수찬이 된 뒤 평북감시(平北監試), 경시관...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문신. 본관은 밀양(密陽). 증조할아버지는 박시환(朴時煥)이며, 할아버지는 효력부위 박성구(朴聖耈)이다. 생부는 박필하(朴必夏)로, 박필한(朴必漢)의 양자로 들어갔다. 어머니는 남궁씨이다. 1653년(영조 29) 문과에 을과 제4인자로 급제하여 1757년 성균관학록, 1759년 성균관전적 겸양현고주부, 1758년(영조 34) 성균관학유, 1759년...
-
임진왜란 중 충주는 가장 희생이 많았던 싸움터였다. 임진왜란 초기에 신립 장군은 탄금대 앞에서 달천과 남한강을 뒤로 하여 배수진을 치고 왜군과 전투를 벌였다. 이 전투는 8,000여 명의 조선군 중 두서너 명만이 살아남았다고 할 만큼 희생이 큰 전투였다. 또한 충주읍성에 있던 많은 사람들, 즉 사민(士民)과 관속(官屬)들이 당대의 명장인 신립의 군대가 주둔하고 있음을 믿고 피난을...
-
1539년(중종 34) 원주 사람 유석이 아버지를 죽이려 한 사건 때문에 충주목이 예성부로 강등된 사건. 『중종실록(中宗實錄)』 중종 35년 7월 6일조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천하의 죄악 치고 자기 아버지를 죽인 것보다 더 큰 죄악이 없기 때문에 그 처형도 가장 극형을 적용하는 것입니다. 전에 밀양의 박군효와 수원의 노범근도 자기 아버지를 죽인 죄로...
-
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무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계순(季純), 호는 은암(隱庵). 증조할아버지는 주부를 지내고 의정부좌찬성에 추증된 이오(李塢)이고, 할아버지는 의정부좌찬성에 추증된 생원 이자침(李自琛)이고, 아버지는 영의정에 추증된 월성부원군 이난(李鸞)이고, 어머니는 참봉을 지낸 우담령(禹聃齡)의 딸 단양우씨이다. 아들은 효종 때 우의정을 역임하고 송시열(宋時...
-
1910년에서 1945년까지 일본제국주의에 의한 식민 통치가 지속되었던 시기의 충청북도 충주의 역사. 1910년 8월 한국병합이 체결됨에 따라 일제의 조선 침략이 완성되었다. 일제는 종래의 통감부를 폐지하고 더 강력한 통치기구인 조선총독부를 설치하여 1910년 10월부터 한반도에 대한 구체적인 식민지 지배에 들어갔다. 이때부터 시작되는 조선총독부의 한반도 지배정책은 시대에 따라 다...
-
조선 중기 조선을 침입한 왜군과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서의 전쟁 1592년 4월 13일에 일본군이 부산포에 상륙함으로써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부산포에 이어 동래를 점령한 일본군은 세 길로 나누어 진격하여, 상주 전투에서 이일(李鎰)을 격파하고 충주에서 신립(申砬)을 깨뜨린 뒤 이렇다 할 전투도 치르지 않고 서울을 점령하였다. 이에 선조는 의주로 피난가고, 조선은 7년 동안 일본군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