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9032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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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毛陶院址 |
영어의미역 | Modowon House Site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터 |
지역 | 충청북도 충주시 신니면 모남리 |
시대 | 고려/고려,조선/조선 |
집필자 | 강민식 |
성격 | 원 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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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건물 건립시기/일시 | 고려시대 |
소재지 주소 | 충청북도 충주시 신니면 모남리 |
[정의]
충청북도 충주시 신니면 모남리에 있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원터.
[개설]
역(驛)과 함께 원(院)은 공무 수행자의 편의를 돕기 위해 국가가 설치한 공공 시설물이다. 원에서는 숙식이 가능한 시설을 갖추어 운영하였는데 신니면 모남리에는 모도원의 지명과 함께 그 터가 전한다.
[변천]
원은 삼국시대부터 모습이 보이는 역과 함께 공공 시설물로 운영되기 시작하여, 고려시대를 거치면서 사찰과 결합되기도 하였다. 조선시대 전기에는 전국에 1,310개소가 설치되어 대로·중로·소로에 설치되었다. 공무 수행자의 숙식은 물론 기로연(耆老宴) 및 빈민 구제 활동을 펼치기도 하였다. 그러나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대부분 쇠락하였고 그 기능을 지방 관아나 역에서 담당하였다. 또 통신 체제인 봉수(烽燧)가 쇠퇴함에 따라 파발이 역과 결합한 역참(驛站)이 대부분의 기능을 담당하였다. 이에 따라 원의 기능은 점차 민간의 주막이 대신하게 되었다.
모도원에 대한 문헌상 기록으로는 『대동지지(大東地志)』정리고(程里考)에 “동남지동래사대로(東南至東萊四大路)에는 천곡에서 10리 간격으로 모노원(毛老院)이 있는데 곧 모도원(慕道院)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한말 자료에는 모도원(慕陶院)으로 기록되어 있다.
[위치]
지금의 충주시 신니면 모남리 모도원마을에 있다.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에는 천곡(泉谷)과 숭선(崇善) 사이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발굴조사경위 및 결과]
1998년 충주시 문화유적분포지도 지표 조사에서는 모남리 97-1번지와 97-2번지를 원 터로, 마을 주민 김복중의 집을 마방 터로 추정하였다.
[현황]
1998년 조사에서 원 터로 추정했던 곳은 현재 인삼밭으로 경작되고 있으며, 마을에서 옛 원 터의 흔적을 찾기가 쉽지 않다. 2007년 예성문화연구회에서는 모남리 남악마을 서쪽에서 네모진 토루를 찾아 모도원 터로 추정한 바 있다. 그러나 현지 조사 결과 남악마을 서쪽 모남리 284-1번지(전, 456㎡)와 284-2번지(임, 1524㎡)의 네모꼴 유적은 원 터보다는 토성으로 보인다.
특히 이러한 유형은 충청북도 기념물 제137호인 충주 견학리 토성과 매우 유사하다. 견학리 토성보다 작고 방향을 달리하지만 남쪽으로 향한 능선 위에 네모꼴의 토루를 쌓은 형태이다. 바깥 선을 기준으로 동서 43~45m, 남북 43~48m의 크기이다.
성 안쪽은 토루 부분과 달리 지목이 전(田)으로, 마을 쪽인 동쪽은 바로 이웃하여 있는 경작지와 통로로 사용되고 있다. 주변의 울창한 잡목과 경작으로 인해 접근이 쉽지 않지만 반드시 정밀 조사가 필요한 유적이다. 앞선 지명 조사 등에서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이번 현지 조사에서 만난 마을 주민은 이곳을 ‘성안’이라 부르고 있다.
[의의와 평가]
역과 달리 원은 민간 주막이 성행하면서 역할이 크게 감소되었지만 여전히 여러 곳의 마을 지명에 그대로 남아 있다. 마을의 유래를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사례로서 원 터의 흔적을 보존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