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14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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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社會大衆黨 慶北道黨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대구광역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일수 |
설립 시기/일시 | 1960년 6월 15일 - 사회대중당경북도당 결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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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체 시기/일시 | 1960년 10월 - 사회대중당경북도당 해체 |
최초 설립지 | 대구 구 국립극장[현 CGV 대구한일극장] - 대구광역시 중구 동성로 39[동성로2가 88-22] |
성격 | 정당 사회단체 |
[정의]
1960년 6월 대구광역시에서 결성된 사회대중당 소속 조직.
[개설]
사회대중당경북도당(社會大衆黨慶北道黨)은 1960년 6월 15일 대구 구 국립극장에서 박기출·이동화와 대의원 825명 중 565명이 참석한 가운데 ‘사회대중당경북도당 결성 대회’를 개최하였다. 결성 대회에서 이동화는 사회대중당을 “민주사회주의의 당이며, 노동자·농민·인텔리·중소 상공업자 등 광범위한 근로대중의 권익을 위하여 독재와 자본의 힘과 대결하는 정치세력”으로 규정하였다. 중앙당 발기인 박기출은 축사에서 사회대중당이 4·19혁명으로 제기된 민주 과업을 담당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사회대중당은 집단지도체제의 총무 위원회를 구성하였는데 총무 위원에 이영옥·윤지화·박지사·송기찬·김영달·유한종·백기만·양재소·김영원·양호민·홍형의 등이 선정되었고, 재정위원회 위원장에 양재소·당무위원회 위원장에 이영옥·조직위원회 위원장에 유한종이 선출되었다. 중앙당과 마찬가지로 조봉암에서 김달호로 이어지는 진보당계와 서상일을 중심으로 하는 비진보당계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사회대중당경북도당은 반보수정당 전선의 구축이라는 기치 아래 진보당계, 근민당계, 민혁당계, 한독당계 등 모든 혁신 세력의 결집체였다.
사회대중당의 중앙당은 경북도당보다 늦은 1960년 6월 17일 서울 진명여자고등학교 강당 삼일당에서 창당 준비 위원 대표자 회의를 개최하고 출범하였다. 사회대중당의 대표 총무 위원에 대구 출신의 서상일이 선출되었다.
[설립 목적]
사회대중당경북도당은 민주혁명의 완수, 평화적 남북통일, 민주사회주의 기본 노선에 따른 민주적 복지사회의 실현을 목적으로 결성되었다.
[변천]
1960년 6월 15일 결성된 사회대중당경북도당은 1960년 10월 이미 두 조직으로 분열되었고, 10월 15일 서울에서 혁신5당통합추진회가 구성되면서 해체되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사회대중당경북도당은 민주 과업을 담당하기 위하여 1960년 7월 29일에 실시된 7·29총선거[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 총력을 기울였다. 사회대중당은 1960년 6월 말까지 대구와 달성 지역 선거에 나갈 후보 공천을 마무리하였다. 민의원 후보로 대구갑구 최석채, 대구을구 서상일, 대구병구 김수한, 대구정구 양호민, 대구 무구 이동화, 달성 이영옥 등이 출마하였다. 사회대중당은 선거에서 승리하여 의회로 진출하기 위하여 대구와 경상북도 선거구 후보자들을 거물급들로 구성하여 보수 대혁신의 정치 구도를 확립하려고 하였다. 지역 언론에서 ‘대구는 혁신계의 붐’이라 할 만큼 사회대중당에 대한 기대가 한층 부풀었다.
사회대중당경북도당의 선거공약은 4월 혁명의 완수, 유엔 감시하 남북한 총선거 통일 방안, 계획경제와 자유경제를 혼합한 경제체제의 확립, 농업정책, 복지정책, 교육과 문화정책에 이르기까지 진보 정책으로 채워졌다. 선거일이 다가오면서 사회대중당의 통일 방안이 용공성 시비로 비화되자 사회대중당경북도당은 1960년 7월 21일 수성천 변에서 ‘사회대중당 연설회’를 열고, 경제 혁명의 필요성, 보수와 혁신의 정치 구도의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하지만 7·29총선거에서 사회대중당경북도당은 민의원 6명의 후보 중 대구을구의 서상일을 제외한 후보는 낙선하고, 참의원 한 명의 당선인도 없이 참패하였다.
7·29총선거 이후 사회대중당은 선거 참패의 책임을 둘러싸고 진보당계와 비진보당계로 분열되었고, 사회대중당경북도당은 사회대중당경남도당과 함께 도당 차원에서 가장 먼저 두 당부로 분열되었다. 사회대중당경북도당은 7·29총선거 이후 분열된 모습을 극복하지 못하고, 사회당·통일사회당·혁신당·사회대중당 등 여러 정당으로 분립하였다가 해체되었다.
[의의와 평가]
4·19혁명을 계기로 ‘혁신’을 내세우며 새로운 정치세력으로 등장한 사회대중당경북도당은 7·29총선거에 역량을 집중하였으나 참패한 뒤 진보당계와 비진보당계의 여러 정당으로 분립되었다. 사회대중당경북도당의 대의원들은 여러 정당으로 나뉘어져 원외에서 통일운동을 중심으로 하는 활동 공간을 마련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