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119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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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大邱 七·二九選擧 |
이칭/별칭 | 제5대 국회의원 선거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대구광역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일수 |
[정의]
1960년 7월 29일 대구에서 치러진 제5대 국회의원 선거.
[개설]
대구 7·29선거는 1960년 7월 29일 대구에서 치러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이다. 4·19혁명 이후 국회를 해산하고 내각책임제 개헌을 통하여 민의원과 참의원을 선출하는 선거였다.
[역사적 배경]
1960년 4·19혁명을 통하여 이승만과 자유당 정권이 무너지고, 내각책임제를 국가권력으로 하는 개헌이 이루어졌다. 이에 1960년 7월 29일에 전국에 민의원 233명과 참의원 33명을 선출하는 제5대 국회의원 선거[7·29선거]가 치러졌다.
[경과]
대구의 7·29선거는 4·19혁명의 영향으로 다양한 정당의 참여로 이루어졌다. 그 가운데 보수계의 민주당과 혁신계의 사회대중당이 주목을 받았다. 대구의 7·29선거는 6개의 선거구에서 6명의 민의원과 8명의 참의원을 선출하는 총선거였다.
민의원의 경우 전체 6개 선거구에 22명의 후보가 출마하였다. 갑구에는 민주당의 서동진과 최석채 등 2명, 을구에는 사회대중당의 서상일, 민주당의 황봉갑, 무소속의 이근상과 윤지화 등 4명, 병구에는 사회대중당의 김수한, 민주당의 임문석, 무소속의 김영섭·김학봉·이근하 등 5명, 정구에는 민주당의 조재천, 사회대중당의 양호민 등 2명, 무구에는 민주당의 조일환, 사회대중당의 이동화, 무소속의 윤중호·이우철, 기구에는 민주당의 장영모, 사회대중당의 이영옥, 노협의 김말룡, 무소속의 김정호·이석헌·서곤수 등 6명이 출마하였다.
[결과]
대구의 7·29선거는 민주당의 압승으로 마무리되었다.
민의원 선거에서 갑구는 민주당의 서동진, 을구는 사회대중당의 서상일, 병구는 민주당의 임문석, 정구는 민주당의 조재천, 무구는 민주당의 조일환, 기구는 민주당의 장전모 등이 당선되었다. 정당별로는 민주당 5명, 사회대중당 1명이었다.
참의원 선거는 경북 선거구로 치러졌는데, 제1부 당선자는 민주당의 백남억·최희송, 무소속의 이효상·송관수 등 4명, 제2부 당선자는 민주당의 이원만, 한국사회당의 최달선, 무소속의 권동철·김장섭 등 4명 등 8명이 당선되었다. 참의원의 정당별 당선은 민주당 3명, 무소속 4명, 한국사회당 1명의 순이었다.
대구의 7·29선거 결과는 혁신계 정당이 선전할 것이라는 일반의 기대와는 사뭇 달랐다. 선거전이 펼쳐질 때는 대구 지역에 혁신이 붐을 일으키고 있다거나 보수와 혁신 사이의 백중지세를 보인다는 전망이 나와 사회대중당은 대구와 경상북도에서 20석 이상의 당선을 예상하였다. 그러나 대구의 7·29선거 결과는 혁신계 정당의 참패와 민주당의 압승으로 나타났다.
[의의와 평가]
대구 7·29선거는 4·19혁명 이후 내각책임제 개헌에 따른 국회의원 선거로서 민주당의 압승, 혁신계 정당의 참패, 무소속의 약진 등의 양상을 보였다. 이후 민주당은 제2공화국의 집권 정당이 되었으나 민주당과 신민당으로 분당되었다. 혁신계 정당들은 7·29총선거의 참패 원인에 대한 책임소재를 밝힌다면서 분열하였다. 이후 재정립된 혁신계 정당들은 장외에서 한미경제협정 반대, 이대악법 반대, 통일운동 등을 전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