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238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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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趙春慶 |
영어공식명칭 | Jo Chunkyung |
이칭/별칭 | 일여(一如),승와(升窩)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대구광역시 서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구본욱 |
출생 시기/일시 | 1714년 - 조춘경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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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753년 - 조춘경 진사시 합격 |
몰년 시기/일시 | 1786년 1월 4일 - 조춘경 사망 |
출생지 | 조춘경 출생지 - 대구광역시 서구 원대동 |
거주|이주지 | 조춘경 거주지 - 대구광역시 서구 원대동 |
묘소|단소 | 조춘경 묘소 - 대구광역시 북구 노곡동 |
성격 | 학자 |
성별 | 남성 |
본관 | 함안(咸安) |
[정의]
조선 후기 대구 출신의 학자.
[가계]
조춘경(趙春慶)[1714~1786]의 본관은 함안(咸安)이며, 자는 일여(一如), 호는 승와(升窩)이다. 아버지는 조헌익(趙憲益)이고, 어머니는 평산신씨(平山申氏)이다. 동생은 조최경(趙最慶)·조천경(趙天慶)이다.
[활동 사항]
조춘경은 1714년(숙종 40) 지금의 대구광역시 서구 원대동에서 태어났다. 1753년(영조 29) 진사시에 합격하였다. 당시 향리에서 학문과 덕행으로 널리 알려진 백불암(百弗庵) 최흥원(崔興遠)[1705~1786]과 깊이 교유하였다. 백불암은 “우리들이 도저히 따를 수 없는 재능을 갖춘 인사로 옛 사람이 말하는 재덕과 역량이 출중한 호걸지사이다”라고 조춘경을 평하였다.
조춘경은 1762년(영조 38) 사도세자(思悼世子)가 뒤주 속에서 죽임을 당하였을 때 관청으로 나아가 곡(哭)을 하며 슬퍼하였다. 1774년(영조 50) 폭우로 연경서원(硏經書院)의 묘우(廟宇)가 훼손되어 서원을 동쪽으로 옮겨 지을 때에는 공사원(公事員)을 맡았다. 1786년(정조 10) 1월 4일 사망하였다.
[학문과 저술]
조춘경의 저술로는 『승와유고(升窩遺稿)』가 있다.
[묘소]
조춘경의 묘소는 대구광역시 북구 노곡동에 있다. 묘갈명은 공조판서 여주(驪州) 이가환(李家煥)이 지었다
[상훈과 추모]
조춘경은 1900년(광무 4)에 사도세자의 죽음을 변무한 일로 통정대부(通政大夫) 비서원승(祕書院丞)이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