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조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2563
한자 金龍祚
영어공식명칭 Kim Yongjo
분야 문화·교육/문화·예술,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예술인
지역 대구광역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신현정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16년 3월 16일연표보기 - 김용조 출생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32년 - 김용조 조선미술전람회 입선
수학 시기/일시 1940년 - 김용조 일본 태평양미술학교 야간부 수학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42년 - 김용조 일본 동경 문부성미술전람회 입선
몰년 시기/일시 1944년 6월 8일연표보기 - 김용조 사망
출생지 내당동 - 대구광역시 서구 내당동 지도보기
학교|수학지 달성공립보통학교 - 대구광역시 지도보기
학교|수학지 태평양미술학교 야간부 - 일본 도쿄시
활동지 일본 - 일본
활동지 대구 - 대구광역시
성격 화가
성별 남성
대표 경력 조선미술전람회 특선

[정의]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서양화가.

[활동 사항]

김용조(金龍祚)[1916~1944]는 1916년 지금의 대구광역시 서구 내당동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 아래 성장한 김용조는 대구 달성공립보통학교[현 대구달성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중등학교는 진학하지 못하였다. 은사인 이응창의 도움으로 서동진대구미술사에 입학하였으며, 1931년 대구 서양화가 단체인 향토회(鄕土會)에 참가하였다.

김용조는 1932년 제11회 조선미술전람회[선전]에서 「풍경」으로 입선하였으며, 1934년 제13회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정물」·「어느 봄날」·「풍경」 등 3점이 동시에 입선하였다. 1935년 제14회 조선미술전람회에서 「그림책을 보는 소녀」로 특선, 「여름 강사」·「비 온 뒤」로 입선하였다. 1936년 제15회부터 제18회까지 「맥하」·「추경」·「옥상의 석양」·「어선」·「흰 돛대의 배」·「배」가 연속하여 입선하였다.

김용조대구미술사를 그만두고, 이응창이응창의 장인 서상일의 도움으로 조양회관 2층에 화실을 마련하였다. 1937년 무영당백화점 사장 이근무의 도움으로 무영당에 취직하여 미술 도안과 장식 일을 하였다. 미술 공부를 하기 위하여 1940년 일본으로 건너가 태평양미술학교 야간부에 입학하여 수학하였다. 1941년 재야 미술 전람회인 일본 광풍회전에서 30호짜리 유화 「우후의 남선」으로 입선, 1942년 일본의 관설 미술전람회인 문부성 미술전람회[문전]에 50호짜리 「남선의 농가」로 입선하였다.

김용조는 1943년 결핵에 걸려 귀국하였으며, 1944년 제23회 조선미술전람회에 「어머니의 상」을 출품하여 특선하였다.

김용조는 1944년 6월 8일 대구 동산병원에서 29세를 일기로 사망하였다.

[저술 및 작품]

김용조는 인물·풍경·정물 등 다양한 영역의 작품 활동을 하였다. 작품의 구도가 견실하며 화면상 역동감이 있고, 색채는 밝고 명암의 구별이 뚜렷한 것이 특징이다.

김용조의 대표작으로는 「어선」[1938년 조선미술전람회 입선작], 「해경」[목판에 유채, 가로 40.5㎝, 세로 52.5㎝] 등이 전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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