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597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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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韓服 |
영어공식명칭 | Traditional Korean dress |
분야 | 생활·민속/생활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대구광역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심도희 |
[정의]
대구광역시에서 입었던 우리 민족 고유의 의복.
[개설]
한복은 우리나라의 전통의복이다. 한복은 시대에 따라 옷의 형태나 모양의 변화가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저고리와 바지, 치마, 겉옷으로 구성된다.
[연원]
한복을 구성하고 있는 ‘저고리’란 복식용어는 고려시대 『악학궤범』의 기녀 복식에 있는 ‘남저고리’, ‘한삼’ 등의 용어와 세종 때의 「원경왕후선전의(元敬王后選奠儀)」에 기록된 ‘홍단자적고리(紅段子赤古里)’에 연원이 있다. 그리고 ‘치마’라는 용어의 정착도 또한 「원경왕후선전의」에 “남라적마말(藍羅赤亇襪), 백저포적마(白紵布赤亇)”에 있는 ‘적마’에 기원을 두고 있다. 이후 적마는 『훈몽자회(訓蒙字會)』에서 ‘쵸마’ 또는 ‘츄마’로 기록되었고, 『한중록』에서 ‘치마’로 기록되었다. 저고리는 남녀노소가 입었던 것으로 종류가 많았고, 바지나 치마에 비하여 모양의 변화도 많았다.
[변천사]
한복은 상고시대부터 내려온 고유 복식으로 조선시대에 이르러 현재의 기본형태가 이루어졌다. 남자는 저고리와 바지를 입었고, 양반의 경우, 예를 갖추기 위하여 반드시 두루마기나 도포 등을 입었다. 여자는 저고리와 치마를 입었고, 외출할 때 얼굴을 가리기 위해 두루마기와 비슷한 장옷이나 쓰개치마, 너울 등을 머리에 쓰고 다녔다.
1876년 병자수호조약 체결 이후 한복은 서구의 옷과 공존하면서 다양한 변모를 하였다. 대구 지역에 살았던 사람들 또한 저고리에 유럽식의 조끼를 착용하거나 어깨끈이 달린 통치마를 입기도 하였다. 1950~1960년대에 남자들은 양복을 빠르게 수용하였고, 여성들은 고름 대신 브로치를 착용하고, 발목이 보이는 치마를 입고 구두를 신었다. 1970~1980년대 이후 한복은 전통적인 아름다움과 현대적인 감각을 살린 디자인으로 다시 주목받기 시작하였다.
[생활민속적 관련 사항]
한복은 우리가 살았던 시대의 사회적 현상을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이자 한민족의 정체성을 보여 주는 대표적인 상징이다. 한복은 신분에 따라 복식 착용에 제한을 두기도 하였고, 관혼상제의 의례에 따라 복식을 구별하기도 하였으며, 실용적인 목적이나 장식적인 차원에서 재료나 형태가 변모되었다. 우리 민족이 백의(白衣)를 좋아한 것을 청렴, 결백, 청빈의 상징적 의미로 해석하기도 하고, 한복의 색깔이나 문양, 장식에서 음양오행의 화합과 건강, 부귀, 명예 등의 상징적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현황]
한복은 대구 지역에서 일상복이 아니라 특별한 날에 입는 옷이다. 주로 설이나 추석 명절, 또는 결혼식이나 회갑연 등이 있을 때 입는 경우가 많다. 1920년대부터 있었던 대구의 서문시장은 옛날부터 포목점이 발달하여 전국에서 한복을 만들어 입으려는 사람들로 성황을 이루었다. 지금도 한복을 맞추거나 대여하는 사람들이 많기는 하지만, 평소에 한복을 입고 다니는 시민들을 보기란 어렵다. 문화관광의 유치차원에서 약령시 일원에는 근대골목투어와 함께 한복 체험을 할 수 있는 상설 대여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