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13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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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大邱驛 開通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대구광역시 북구 태평로 161[칠성동2가 302-155]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일수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04년 8월 - 대구역 임시 개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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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생|시작 시기/일시 | 1905년 1월 1일 - 대구역 개통 |
발생|시작 장소 | 대구역 - 대구광역시 북구 태평로 161[칠성동2가 302-155] |
성격 | 사건|사고 |
[정의]
1905년 1월 1일 경상북도 대구시 칠성동에 경부선 철도 대구 역사를 개통한 사건.
[개설]
대구역은 경부선의 철도 개통과 함께 1905년 1월 1일 정식 개통하였다. 정식 개통 전 대구의 북쪽에 가건물을 세워 1904년 8월부터 임시 역사를 세워 영업을 시작하였다.
[역사적 배경]
대구역은 경부선의 주요 역으로서 경부선이 갖는 의미와 맥을 같이한다. 경부선은 일제의 조선 침략과 지배 정책 수행을 위한 기반이었다. 러일전쟁의 개전이 임박하면서 일제는 군사적인 목적에 따라 공사를 서둘렀다.
[경과]
대구역은 1904년 8월 가건물을 세워 임시 개통하였고, 1904년 12월 경부선이 개통되면서 1905년 1월 1일 정식 개통하였다. 당시 대구역의 면적은 전체 2만 909㎡ 정도였다. 그 가운데 대구역 운영에 직접 필요한 부지는 약 300㎡ 정도였고, 나머지는 민간인에게 임대하였는데, 임대를 받은 민간인 대부분은 일본인이었다. 결국 대구역의 상권은 일본인이 차지하였다.
대구역 개통은 농산물의 상품화를 급격히 촉진하였고, 공장제 상품의 무역 증가에 영향을 미쳤다. 대구역을 통하여 일본으로 이출되는 농산물은 대체로 쌀, 보리, 콩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였다. 대구역을 통하여 들어오는 주요 품목은 목재, 잡화, 식료품, 종이, 금물류 등 다양하였다. 강제 병합 당시 목재의 수입량이 전체 수입량의 25%를 차지할 정도로 많았는데, 근대가 이식되는 과정에서 건축 붐이 일어났음을 방증하는 수치이다.
[결과]
대구역은 경부선의 주요 역으로 대구와 경상북도 지역의 여객과 물산 이동과 유통을 위하여 설치되었다. 대구역 개통은 낙동강을 이용한 어염미두(魚鹽米斗) 무역을 대체하여 나갔다. 경부선 대구역 개통 이후 대구역을 출발점으로 하여 경주와 포항으로 이어지는 대구선과 구미와 김천으로 이어지는 경북선이 설치되었다.
대구역은 지금도 동대구역과 함께 대구의 주요 역으로 운영되고 있다.
[의의와 평가]
대구역 개통은 경부선의 부설과 함께 이루어진 것으로 교통 운수뿐만 아니라 경제, 사회, 문화 등 사회 전반에 걸쳐 큰 변화를 불러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