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경협 반대운동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1643
한자 韓美經協 反對運動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대구광역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일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61년 2월 10일연표보기 - 한미경협 반대운동 대구 지역 16개 정당과 사회단체가 2·8한미경제협정반대공동투쟁위원회 결성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61년 2월 21일 - 한미경협 반대운동 2·8한미경제협정반대공동투쟁위원회 명동성당 앞에서 성토대회와 공청회를 개최한 뒤 가두시위 전개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61년 2월 28일 - 한미경협 반대운동 대구종합운동장에서 열린 ‘2·28 1주년 기념식’에서 대구 지역 학생들이 한미경제협정 체결 반대
성격 사회운동

[정의]

1961년 2월 이후 대구에서 학생과 정당사회단체가 한미경제협정에 반대하며 벌인 운동.

[역사적 배경]

1961년 2월 8일 한국의 장면 정부와 미국 정부 사이에 한미경제협정이 체결된 이후 대구의 학생과 정당·사회단체들은 한미경제협정을 굴욕, 주권 침해, 민족 수치로 규정하고 한미경제협정 반대 및 국회 비준을 저지할 목적으로 단체를 결성하여 나가면서 한미경협 반대운동(韓美經協反對運動)을 전개하였다.

[경과]

1961년 2월 8일 한미경제협정이 체결되자 1961년 2월 10일 대구에서는 민족자주통일중앙협의회를 중심으로 사회대중당, 통일사회당 준비위원회, 사회당 등 16개 정당과 사회단체가 모여 ‘2·8한미경제협정반대공동투쟁위원회’를 결성하였다. 2·8한미경제협정반대공동투쟁위원회는 한미경제협정은 한국의 주권을 완전히 무시한 굴욕적인 조약이며, 한국으로 하여금 미국의 상품시장이 될 것을 강요하는 조약이라고 규정하였다.

2·8한미경제협정반대공동투쟁위원회는 민주당 정부가 주권을 포기한 처사라며 한미경제협정 체결에 대한 반대 의사를 분명히 밝히고 한미경제협정의 국회 비준을 저지하기 위한 범국민운동을 전개할 것을 표방하였다. 대구에서 한미경제협정 반대에 대한 움직임이 일자 민주당 경북도당은 1961년 2월 17일 대구역 광장에서 시국 강연회를 열고 경제 제일주의를 내세웠다. 민주당 경북도당의 시국 강연회는 들끓는 한미경제협정 반대 움직임에 대한 대응이었으나 대구의 한미경협 반대운동은 계속 이어졌다.

2·8한미경제협정반대공동투쟁위원회는 1961년 2월 21일 국회 개원일에 맞추어 국회의원들에게 호소문을 배부하는 한편 명동성당 앞에서 성토대회와 공청회를 개최한 뒤 가두시위를 벌였다. 대구 지역 언론도 사설에서 ‘이번의 한미경제협정은 한국의 장기적인 예속을 의미한다’거나 ‘한미신경제협정은 참을 수 없는 민족적 수치이다’라는 격앙된 반응으로 한미경제협정을 비판하였다. 1961년 2월 28일 대구종합운동장에서 31개 교의 중고등학생 3만 명이 참가한 가운데 열린 ‘2·28 1주년 기념식’에서 학생들은 ‘한국을 반식민지화하려는 굴욕적인 한미경제협정을 결사반대하고 한미행정협정을 조속히 체결하라’고 요구하며 한미경제협정 체결에 반대하였다.

[결과]

대구의 혁신계 11개 정당·사회단체로 구성된 경북한미경제협정반대투쟁위원회는 1961년 2월 28일 민의원과 참의원에서 한미경제협정 비준안이 통과되자 주권 침해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재확인하고 한미경제협협정 철회를 위한 국민운동을 전개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의의와 평가]

대구의 학생과 정당·사회단체가 벌인 한미경협 반대운동은 1961년 2월 한미 간에 체결된 경제협정을 미국의 한국 예속, 주권 침해로 규정하며 한국의 자주와 주권 수호를 일깨웠다는 역사적 의의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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