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203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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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國民精神總動員 |
영어공식명칭 | National Spiritual Mobilization |
이칭/별칭 | 국민총동원,총동원체제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대구광역시 동구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일수 |
[정의]
1938년부터 1945년 8월 14일까지 일제가 전시동원체제를 위해 대구광역시 동구 지역에서도 추진한 식민지배정책.
[개설]
국민정신총동원은 일제가 중일전쟁을 일으키면서 정책적으로 추진한 최고의 정책이었다. 1937년 9월 일본 도쿄 히비야공원에서 진행된 연설회에서 일본 수상 근위(近衛)는 일본·만주·중국을 일본 정치 아래 두고 동양평화를 실현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 관민일치의 국민정신총동원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변하였다. 이후 조선에서도 총독부 주도로 국민정신총동원을 진작시키기 위한 각종 행사가 빈번하게 열렸다. 그 결과 1938년 6월 일본인 중심 사회교화단체와 친일반민족 지향의 친일단체 등이 총독부의 전시동원정책에 부응에 자발적인 전쟁지원을 내세우며 결성하였다. 1938년 7월에는 중일전쟁 발발 1주년을 기념해 경성운동장에서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의 발회식이 거행되었다. 추진 목적은 “황국이 영원히 융창할 기초를 공고히 하고, 신동아의 건설”에 두었다.
[동구 지역 국민정신총동원의 양상]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은 총동원체제를 강화하기 위해 우선, 직업별, 직장별 연맹을 결성해 나가면서 1940년도부터 각도연맹 결성 계획을 세워 추진해 나갔다. 이후 하향식 방식에 따라 부, 군 단위뿐 아니라 리 단위까지 각 행정단위별로 조직을 만들어 나가고자 하였다. 대구광역시 동구 지역의 면에는 면을 단위로 국민훈련소를 설치하여 운영하였다. 또한 부락연맹과 애국반을 조직하여 조선인 각 개인을 총동원체제에 강제 동원하였다. 대구광역시 동구의 경우 해안면과 공산면을 중심으로 부락연맹이 만들어졌고, 애국반이 조직되었다. 당시 대구광역시 동구가 포함된 달성군의 경우 부락연맹은 전체 222개가 조직되었다. 애국반은 1,612개가 조직에 전체 인원이 1만 7천 245명 정도의 규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