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203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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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産米 增殖 計劃[東區] |
영어공식명칭 | Rice Production Increase Plan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대구광역시 동구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일수 |
[정의]
1920년대 대구광역시 동구에 일제가 추진한 식민지농업정책.
[개설]
1910년대 식민농정으로서 토지조사사업이 실시되었다. 토지조사사업은 근대적인 토지소유권의 확립에 그 핵심이 있었다. 일제는 이에 기초해 농업·농민에 대한 계통적 지배체제를 수립해 나갔다. 곧 지주회의 조직, 면작조합, 잠업조합, 삼림조합의 설립이 그것이었고, 1920년대에는 모든 농업 단체를 통합해 원료가 되는 면화, 고치[누에고치], 우피[소가죽]를 상품으로 최대한 생산시켜 수탈하는 정책을 실시했다. 이와 같은 식민농정으로 조선의 농업은 마침내 종속적인 상업적 농업체계로 전면 재편되어 갔고, 수탈적 상품화 확대정책이 본격적으로 실시되는 1920년대 초반부터 농산물 상품화는 비약적으로 확대되었다.
[동구의 산미증식계획]
미곡의 상품화는 1920년대 대표적 농정인 산미증식계획에서 찾을 수 있다. 일제는 산미증식계획을 철저히 ‘지주 본위’로 실시하였다. 그에 따라 지주에게 미곡이 집중하도록 해 생산의 실질적인 증가 없이도 미곡상품화의 비약적 확대를 가능케 하였다. 따라서 산미증식계획으로 인해 경상북도 지역 농촌은 부농층의 상품생산이 몰락하고 새로이 지주층의 상품생산과 영세 소농층의 궁박 판매가 확대되었다. 또한 전반적으로 모든 농민 계층의 하강분해를 보이면서 지주제에 예속된 자소작농과 소작농이 모든 농업호수의 76.6%[1926년 통계]를 차지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러한 현상이 현저하였던 지역은 영덕군, 영일[지금 경상북도 포항시 영일읍], 영천, 경주, 경산, 청도, 대구, 선산, 문경, 예천 등이었다. 특히 금호강 유역의 대구평야와 경주평야 지역이었다. 금호강 유역은 경작지가 일정하게 형성된 해안면 즉 오늘날 대구광역시 동구 동촌 지역이었다. 이후 1927년 해안면에 해안수리조합을 설립하기 위한 입찰 신청이 있었고, 1931년 승인이 이루어져 해안수리조합 설립이 추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