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815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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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琴里 陽地- 洞祭 |
영어공식명칭 | Village Tutelary Festival in Yangji-Maeul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의례/제 |
지역 | 대구광역시 달성군 유가읍 금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창언 |
[정의]
대구광역시 달성군 유가읍 금리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개설]
금리 양지마을 동제는 인접한 평지 마을과 통합하여 지내는데, 양지마을의 숫당산과 평지 마을의 암당산에서 마을의 무병과 풍년을 빌며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이다. 합사하기 이전에는 양지마을과 평지 마을의 숫당산과 암당산 등 각각 두 곳의 제당에서 별도로 동제를 지냈다.
[신당/신체의 형태]
양지마을은 예전에 감씨가 살았던 동쪽의 산이라는 뜻에서 감동산이라 했다. 합사하기 이전 양지마을의 숫당산은 마을 뒷산에 있었고, 암당산은 마을의 버드나무였다. 평지 마을의 숫당산은 돌탑이었고, 암당산은 참나무였다. 이곳에는 당목과 관련한 전설이 있다. 전설에 의하면 이곳의 당목을 현풍 현감이 베라고 하였으나 한 선비가 나타나서 이 나무 앞에서 국상을 맞은 선비들이 곡을 하였는데 이 나무를 베면 역적이 된다면서 만류하였다고 한다. 당시 벌목꾼들이 나무 베기를 멈췄으나 이미 도끼를 맞은 나무는 고사하고 그 자리에 새로운 나무가 자라 현재의 당목이 되었다고 한다.
[절차]
양지마을과 평지 마을이 합사한 이래, 매년 동제를 마친 뒤에 개최되는 대동회에서 이듬해 제관을 선정했다. 한 명의 헌관을 포함해서 축관, 공양주 등 세 명의 제관을 선정했으며, 제관들은 제일을 십여 일 앞두고 금기를 수행했다. 근래에는 이장에게 동제를 일임하는 방식으로 변경되었다. 마을에서 제사나 제반사에 소요되는 비용은 동제를 앞두고 천왕대를 앞세워 행한 지신밟기를 통해 거두었다. 인근 마을과 유사하게 천왕대에 옷을 입히는 절차를 밟았는데, 오방색을 주로 사용하는 다른 마을과는 달리 흰색의 천을 사용하였다. 천왕대에 옷을 입히는 과정에서 마을 사람들은 각자의 소망을 담은 백지를 천왕대에 묶기 위해 일정한 비용을 지불했는데, 이를 기금으로 제사를 지냈다.
제일이 다가오면 마을 전체에서 금줄을 치고 금기를 행했다. 제수는 산 돼지를 한 마리 구입하여 제를 지내는 날 당산에서 직접 잡아 머리만 제수로 사용하였다. 나물류와 과일류, 명태포 등의 제수를 함께 장만하였으며, 메와 탕은 4그릇씩 준비하였다. 탕으로는 미역을 재료로 하였고, 제주는 직접 담근 탁주를 사용하였다. 제의는 바깥당산과 안당산의 순으로 지냈다.
[현황]
금리 양지마을 동제는 현재 양지마을과 평지 마을이 대구 테크노폴리스 일반 산업 단지의 조성에 따라 해체되자, 이후 제당도 사라지고 제의도 중단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