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8156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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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油谷里 - 洞祭 |
영어공식명칭 | Village Tutelary of Jimsil-Maeul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유적/민간 신앙 유적 |
지역 | 대구광역시 달성군 유가읍 유곡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창언 |
[정의]
대구광역시 달성군 유가읍 유곡리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개설]
유곡리 짐실마을 동제는 정월대보름 오전에 산신당에서 마을의 무병과 풍년을 빌며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이다. 짐실마을에서는 산신당과 두 곳의 제당 등 모두 세 곳의 제당에서 동제를 지냈다. 마을 뒷산의 산신당과 마을 회관 옆의 제당, 그리고 마을 입구의 제당의 형태는 산신당, 동제당, 수구막이당 혹은 상당, 중당, 하당의 기본적인 마을 신앙의 형태를 잘 반영하고 있다. 짐실마을은 마을 뒤편의 커다란 바위에 서린 이슬이 햇빛에 반사되면 마치 기름을 바른 것처럼 윤이 난다는 것에서 지명이 유래되었다.
[신당/신체의 형태]
짐실마을 세 곳의 제당의 신체는 모두 당목이다. 마을 뒷산에 위치한 산신당의 당목은 돌배나무이고, 마을 회관 옆과 마을의 입구에 위치한 제당의 당목은 모두 느티나무이다. 원래의 당목이 30여 년 전에 태풍이 칠 때 벼락을 맞아 고사한 이후, 현재까지 유일하게 동제를 지내는 마을 회관 옆의 당목은 새로 심은 나무이다.
[절차]
짐실마을에서 간소화되기 이전 동제를 지낼 당시에는 대내림을 통해 선정된 제관들은 1년 동안 매우 엄격한 금기를 수행해야 했다. 제의는 열나흘 자정 무렵 산신당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밤새 산신당에서 공을 들인 다음 새벽녘에 마을 입구의 제당에서 제를 지냈는데, 이때까지는 선정된 세 명의 제관이 주재하였다. 마지막으로 마을 회관 옆의 제당에서 제를 지낼 때에는 원하는 마을 사람 모두가 참여할 수 있었다.
[부대 행사]
세 제당에서의 제의를 마치고 나면 잠시 휴식을 취했다가 저녁에 달집태우기를 하였고, 다음날부터 지신밟기와 각종 놀이를 하며 며칠을 보냈다.
[현황]
유곡리 짐실마을 동제는 30여 년 전부터 간소화하여 전승되고 있다. 당시 당목 중 한 그루가 벼락을 맞아 고사하자 동제 지속에 대한 찬반 논란을 거쳐 동제를 크게 간소화하였다. 현재 유곡리 짐실마을 동제는 정월대보름 오전에 마을 회관 옆의 제당에서만 지내고 있다. 제관은 이장이 전담하여 금기 수행도 이틀 정도에 그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