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40056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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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宋翼弼 |
영어공식명칭 | Song Ikpil |
이칭/별칭 | 여산(廬山),운장(雲長),구봉(龜峯),문경(文敬)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충청남도 당진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홍윤표 |
출생 시기/일시 | 1534년 - 송익필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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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1599년 - 송익필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매년 10월 30일 - 송익필 제향 |
출생지 | 송익필 출생지 - 경기도 파주군 교하읍 삼남리 175번지 심학산[구봉산] 일대 |
거주|이주지 | 송익필 은거지 - 충청남도 당진군 송산면 매곡리 |
묘소|단소 | 송익필 묘소 - 충남 당진시 원당동 |
사당|배향지 | 입한재 - 충남 당진시 원당동 |
성격 | 학자 |
성별 | 남 |
본관 | 여산(廬山) |
대표 관직|경력 | 홍문관 제학 추증 |
[정의]
충청남도 당진시 송산면 매곡리에서 활동한 조선 전기의 학자.
[가계]
송익필(宋翼弼)[1534~1599]의 본관은 여산(廬山), 자는 운장(雲長), 호는 구봉(龜峯), 시호는 문경(文敬)이다. 할아버지는 직장(直長)을 지낸 송인(宋璘), 아버지는 판관 송사련(宋祀連), 어머니는 연일 정씨(延日鄭氏)이다.
[활동 사항]
송익필은 재능이 비범하고 문장이 뛰어나 동생 송한필(宋翰弼)과 함께 일찍부터 문명을 날렸고, 명문(名門)의 자제들과 넓게 교유하였다. 초시(初試)에 한 번 응시한 뒤에는 과거를 단념하고 학문에 몰두하였으며 이이(李珥), 성혼(成渾) 등과 함께 성리학의 이치를 논하였다. 특히 예학(禮學)에 밝아 김장생(金長生)에게 큰 영향을 주었으며, 서인의 막후(幕後) 실력자로 영향을 끼쳤다.
1586년(선조19) 동인의 부추김으로 안씨 집안에서 송사(訟事)를 일으켜 안처겸의 역모 사건이 조작임이 밝혀지자, 안처겸의 역모를 거짓으로 고발해 공신에 책봉된 아버지 송사련의 죄가 드러났다. 송익필을 비롯한 형제들은 안씨 집안의 노비로 환속되자 성명을 바꾸고 도피 생활에 들어갔다.
당시 송익필은 충청도 면천군(沔川郡) 마양촌(馬羊村)[현 당진군 송산면 매곡리]에 살고 있던 친구 김진려(金進礪)의 집에 은신하였다. 송익필이 이곳으로 도피하게 된 것은 토정(土亭) 이지함(李之菡)과 함께 충청도 홍주목 신평현에 살고 있던 이인(異人) 김복선(金福善)을 방문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1589(선조 22) 기축옥사(己丑獄事)로 정여립·이발 등 동인들이 제거되자 송익필의 형제들도 신분이 회복되었다. 송익필은 기축옥사의 막후 조종 인물로 지목되기도 하였다. 그 뒤 조헌(趙憲)의 과격한 상소에 관련된 혐의로 이산해(李山海)의 미움을 받아 동생 송한필과 함께 평안도 희천(熙川)으로 유배되었다. 1593년(선조 26)에 사면으로 석방되었으나 일정한 거처 없이 친구·문인들의 집을 전전하며 불우하게 살다가 1599년(선조 32) 66세의 나이로 친구 김진려의 집에서 사망하였다.
[학문과 저술]
송익필의 문집으로는 『구봉집(龜峯集)』이 전한다. 『구봉집』에는 권 1에 4언시 1수, 오언고시 28수, 칠언고시 8수, 오언절구 39수, 칠언절구 123수가 실려 있고, 권 2에는 오언율시 139수, 오언배율 8수, 칠언율시 108수, 칠언배율 3수가 실려 있다. 1822년(순조 22)에 김장생의 7세손인 김상성에 의해 11권 5책으로 간행되었는데, 일찍이 1622년(광해군 14)에 문인이었던 죽서(竹西) 심종직(沈宗直)이 『비선 구봉 선생 시집(批選龜峰先生詩集)』 1권을 간행한 지 꼭 200년 만의 일이었다.
[묘소]
충청남도 당진시 원당동 입한재 인근에 송익필의 묘소가 있다.
[상훈과 추모]
송익필 사후에 문인과 후학들을 중심으로 신원소(伸寃疏)가 몇 차례 올라갔으나 윤허를 얻지 못하다가 홍계희(洪啓禧)[1703-1771]의 끈질긴 노력으로 1752년(영조 28)에 통덕랑 행 사헌부 지평(通德郞行司憲府持平)에 추증되었다. 1910년(순종 4년) 문경공(文敬公)이란 시호가 내리고 홍문관 제학에 추증되었다.
당진 유림회, 당진 문화원, 구봉 송익필 선생 선양 위원회가 주축이 되어 해마다 학술 세미나를 겸한 학술 강연회 등 송익필을 기리는 선양 사업을 개최하고 있으며, 입한재에서 매년 송익필에게 제사를 지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