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9014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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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공식명칭 | Sericulture |
이칭/별칭 | 양잠 |
분야 | 생활·민속/생활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기도 가평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덕묵 |
[정의]
경기도 가평군에서 누에를 키워 누에 고치를 생산하는 일.
[개설]
누에치기는 다른 말로 ‘양잠(養蠶)’이라고 한다. 경기도 가평 지역에서는 오늘날 양잠을 하는 농가가 거의 없으나 1980년대만 하더라도 농가에서 누에를 키웠다. 특히 1950년대 이전에 태어난 아주머니들은 직접 누에를 키우고 산뽕을 따러 다녔다고 한다.
[양잠의 변천]
누에를 키워 고치가 생산되면 거기에서 실을 뽑아 명주라는 옷감을 짜고, 그것으로 ‘비단옷’을 해 입는다. 오늘날 누에를 치는 경우는 드물지만 우리나라에서의 양잠은 삼한시대를 비롯하여 모든 시대에 장려되었다. 『세종실록지리지』 가평현조에는 “뽕나무 2만여 주를 심고, 부근 각 고을[官]의 각 관청 노비 50여 명을 사역시켜 잠사(蠶事)에 이바지하게 한다.”는 기록이 있어 나라에서 적극 장려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일제 강점기인 1934년에 2,990톤이 생산되었으며, 해방 후 잠시 생산량이 줄었지만 1962년 잠업 증산 5개년 개획의 실시로 1976년에는 4만 1,704톤을 생산하여 세계 3위의 양잠국이 되었다. 그러나 나일론 같은 합성 섬유가 개발되고 유행하면서 1980년대 들어서는 양잠이 점차 줄어들었고, 오늘날에는 누에를 키우는 농가를 거의 볼 수 없는 지경이다.
[누에 키우기]
누에 채반인 잠박에 누에를 얹어놓고 키우는데, 낮에 뽕을 먹이고 밤에 똥을 가려낸다. 누에알이 커지면 누에가 애기잠을 자다가 깬다. 그리고 사나흘 먹고 이틀을 자고, 나흘을 먹고 3일을 잔 후 다시 먹는다. 이어 4일을 자고 나서 일주일을 먹이면 고치라고 하는 집을 짓는데, 이것이 누에고치이다.
가평에서는 5월 초에 누에씨를 받아서 한 달 정도 키우면 누에가 고치[집]를 짓기 때문에 6월 10일경에는 고치를 얻을 수 있다. 과거에는 검사원이 등급을 매기면, 각 면에서 누에고치를 구매했는데 40일 정도 키우면 현금을 만질 수 있어 가평 지역 농가의 중요한 소득원이었다.
[사례]
가평군 북면 제령리의 신영희는 30대이던 1950년대에 면에서 누에알을 한 장 정도 받아와서 누에치기를 시작했다. 한 장은 50~60잠박 정도로 한 줄은 10잠박이 된다. 신영희는 방 한 칸에 잠박을 놓고 산뽕을 따다가 먹였다. 산뽕은 주로 가평군 북면의 달골에서 땄는데, 큰 보자기에 보리밥과 된장을 싸가지고 갔다가 그 보자기에 산뽕을 담아서 돌아왔다. 신영희는 북면 막골에서 40세까지 누에를 치고 북면 상촌[제령리]으로 이사 온 후 3년 정도 더 쳤으나 면에서 누에씨 공급을 중단하자 그만두었다.
가평군 가평읍 복장리 조규상[1928년생]의 부인은 일제 강점기에 누에를 많이 쳤다. 당시 가평읍 유동에 있는 면사무소에서 누에씨를 받아 누에를 친 후 가평에 있는 잠업소에 가져갔는데, 이때 할당 받은 양은 제출하고 남은 물건은 돈으로 환산해 받을 수 있었다. 누에를 기르는 일은 재미가 있었고, 10일 정도 열심히 하면 누에가 저절로 커서 돈벌이가 되었다고 한다. 가평군 청평면에는 누에고치에서 명주실을 생산해 비단의 원단을 만드는 경기제사공장이 있었는데 근래에 문을 닫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