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9014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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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救荒 飮食 |
영어공식명칭 | Famine Relief Food |
분야 | 생활·민속/생활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기도 가평군 북면 제령리 |
시대 | 현대 |
집필자 | 강문석 |
[정의]
경기도 가평군에서 흉년 등의 이유로 곡식이 부족하였을 때 먹는 음식.
[개설]
구황 음식은 약간의 밭작물에 산이나 들에서 자생하는 식물로 구성된다. 가평군의 식생활 중 구황 음식에 관한 현지 조사는 경기도 가평군 북면에 속하는 제령리를 중심으로 이뤄졌다. 제령리는 동쪽으로 가평천이 흐르고 서쪽으로 명지산 자락이 있으면서 평야가 형성되어 있다. 평야가 있어서 가평의 다른 지역에 비해 곡식이 많이 나는 편이다. 막골에 거주하던 강순화[가명, 1922년 생, 여]와 신영희[가명, 1925년 생, 여], 그리고 적목리 화전민 출신의 김두철[가명, 1934년 생, 남]이 기억하는 제령리의 1960년대 이전의 식생활은 주로 구황 음식에 의존하는 것이었다.
[연원 및 변천]
일제 강점기에는 먹을 것이 없어 콩깻묵을 먹었다. 전쟁 직후에 제령리 사람들이 주식으로 먹은 음식은 주로 호밀밥·멧수수밥·조밥·좁쌀죽이었다. 간혹 콩탕과 콩죽을 만들어 먹기도 하였다. 옥시기밥[옥수수밥]과 옥시기죽[옥수수죽]도 자주 먹었던 주식에 속한다. 김두철에 의하면 박정희 대통령 때부터 조생종인 통일벼 덕분에 옥시기밥을 안 먹기 시작했다고 한다. 화전을 할 때 도토리밥도 주식이었다. 감자찜과 보리개떡, 쑥버무리, 나물죽도 먹었다.
[만드는 법]
콩깻묵은 콩으로 기름을 짜고 남은 껍질이다. 흔히 ‘대두박(大豆粕)’이라고 한다. 지금은 콩깻묵을 소여물로 정도로 쓰지만, 일제 강점기에는 이마저도 절박한 구황 음식이었다. 콩깻묵을 그냥 깨물어 먹기도 했고, 밥류를 뜸들일 때 같이 쪄 밥의 양을 늘려 먹었다.
콩탕은 콩을 갈고 배추김치나 시래기를 넣고 소금으로 간을 해 끊인다. 쌀이 있는 경우엔 콩을 불려서 맷돌에 갈고 쌀을 넣어 끓이는 콩죽을 만들어 먹었다.
옥수수 수확이 적을 때 옥수수죽을 만들어 먹었는데 옥수수를 가루로 만들어 끓인 것이다. 가루 옥수수는 양을 늘리고 소화에 이로웠다. 옥수수는 7월경에 맷돌에 타서 옥시기죽을 만들어 먹었고, 맷돌 씻은 물도 끓여 마셨다.
도토리밥은 가을에 따서 겨울에 말린 도토리로 만드는데 도토리를 주워서 물에 데쳐서 담갔다가 큰 가마[용소]에 넣고 끓인다. 12번은 끓여야 쓴맛이 없는 도토리쌀이 된다. 끓인 것을 절구에 찧고, 콩가루가 있으면 섞어 먹는다. 바가지에 담아서 베보자기에 싸서 산에 들고 가서 먹었다. 보리개떡은 보리의 가장 겉껍데기를 벗긴 뒤 그 속껍데기를 가지고 떡을 해먹는다.
쑥버무리는 메밀가루나 밀가루 등 곡식 가루에 쑥을 섞어 넣고 찐 것인데, 쑥은 많이 먹어도 부황이 나지 않기 때문에 많이 먹었다.
쑥 이외의 나물은 많이 먹으면 독성에 중독되거나 부황에 걸릴 위험이 있으므로 나물죽을 만들 경우 곡식 양을 나물의 10% 정도로 넣어야 한다. 보릿고개 때 주로 먹은 나물은 맨나물인데 봄에 산에 가서 나무에서 나오는 움을 뜯어다 먹는 것이 맨나물이다. 그 외 다양한 나물을 뜯어 죽을 만들어 먹었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도토리밥의 경우 산간 지역에서는 주식이지만 평지로 내려가면서 별식으로 먹었다. 1960년대만 해도 화전을 할 때와 많은 사람들이 나무를 베어다 땔감으로 사용하던 시기에는 산에 나물이 굉장히 많았다. 요즘 산에는 나무가 우거져 나물이 별로 없다. 산에서 머루·다래를 따먹었고, 식용버섯의 종류로는 송이버섯·능이버섯·노루궁뎅이버섯·밤버섯·청버섯·싸리버섯 등이 있다. 나물은 참나물과 모시대가 가장 좋고, 그 밖에 칼나물·홑잎·원추리·쑥·묘취·가주대기·물거리당·버두쟁이·미나리싹·산추[리]싹·수리취·지장보살·싸리중산이·잔대뿌리·고비·고사리·질경이 등을 무쳐 먹거나 국을 끓여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