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9000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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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食生活 |
영어공식명칭 | Dietary Life |
분야 | 생활·민속/생활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
지역 | 경기도 가평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덕묵 |
[정의]
경기도 가평 지역의 음식과 관련된 생활 문화.
[개설]
식생활은 음식과 관련된 생활 문화이다. 사람들은 음식을 먹어야 살 수 있고 삶을 영위할 수 있다. 1차적으로 인간은 배고픔을 면하고 삶을 유지하기 위해 음식을 먹는다. 이것은 본능에 가깝다. 그러나 어떤 음식을 먹는가는 그가 처한 환경과 떨어질 수 없다. 즉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자신의 주위에서 구할 수 있는 음식물을 경험하게 된다. 그것은 그의 모태적 입맛으로 어머니가 어릴 때 만들어준 음식이며, 그의 가족이 거주했던 지역의 맛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이것을 ‘고향의 맛’이라고 한다. 경상북도 내륙 북쪽에 살던 사람들은 그들만의 고향의 맛이 있고 함경도에서 내려온 사람들은 그들의 맛이 있으며, 전라도 해안가의 사람들 또한 그들만의 맛이 있다. 이러한 맛은 지역에서 생산된 곡물, 산나물, 산에서 채취한 열매, 바다에서 채취하거나 잡은 수산물 등과 같은 지역 산물 및 생태와 밀접한 관련을 가진다. 물론 여기에 더하여 종교적 이유, 개인의 취향, 역사적·사회 문화적 등 다양한 2차적 조건들에 의해 더욱 세분화될 수 있으나 지역 음식이라고 할 때는 우선 그 지역의 산물 및 자연 환경을 고려해야 한다.
[1970년대 이전 가평 지역의 주식과 구황 음식]
가평은 산으로 둘러싸인 산촌이 많다. 그래서 산촌의 맛을 가지고 있다. 한국전쟁 직후 북면 제령리 사람들이 먹은 일상 음식은 주로 호밀밥, 멧수수밥, 조밥, 좁쌀죽, 옥시기밥[옥수수밥], 옥시기죽[옥수수죽], 콩탕, 콩죽 등이었다. 콩탕은 콩을 갈아 배추김치나 시래기와 함께 넣고 소금으로 간을 해서 끓인 것이다. 쌀이 있는 경우에는 콩을 불려서 맷돌에 간 후 쌀을 함께 넣어 끓이는 콩죽을 만들어 먹었다. 과거의 식생활을 거론하면 주민들은 특히 배고팠던 옛 기억을 떠올린다. 이것은 1970년대 초까지도 우리 국민 대다수의 경험이었다. 당시에는 어떤 음식을 먹을까 선택하기보다 무엇으로든 허기를 채워야 하는 문제가 더 컸다.
한편, 일제 강점기에는 먹을 것이 너무 없어서 콩깻묵을 밥으로 먹기도 했다. 그런데 당시를 겪었던 주민들은 술 주사의 술 단속을 떠올리기도 한다. 일제는 조선의 쌀을 수탈하기 위해 밥 지을 때 쌀을 넣지 못하게 하였으며, 술도 담그지 못하게 했다. 아침이면 칼을 찬 순사가 밥을 짓는 솥뚜껑을 열어보기도 하고 밥그릇을 감시하기 위해 가족이 둘러앉아 식사를 시작하려는 밥상머리에 불청객으로 나타나곤 하였다. 이렇게 농민들은 농사를 지어도 쌀은 수탈되고 대신 만주에서 들여온 콩을 먹도록 강요되었다. 일제 강점기 때 북면에 양조장이 있었는데 술 주사가 별안간 단속을 나오면 양조장 서기들이 몰래 마을마다 연락을 하여 단속에 대비하도록 했다. 그래도 간혹 술항아리가 단속되면 가져가기 전에 깨버리면 증거가 없어서 벌금을 내지 않았다고 한다.
화전민들은 도토리밥을 주식으로 먹기도 했다. 산에서 도토리를 주워 밥을 해서 화전에 가지고 갔다. 이것을 지역 사람들은 ‘도토리쌀’이라고 하였다. 제령리 근처에는 상수리나무가 거의 없고 도토리가 많았다. 도토리를 주워서 물에 데쳐서 담갔다가 큰 가마에 넣고 끓인다. 12번은 끓여야 쓴맛이 없는 도토리쌀이 된다. 끓인 것을 절구에 찧어 콩가루를 섞어서 먹는다. 바가지에 담아 베보자기에 싸서 산에 들고 가서도 먹었다. 감자찜과 감자밥, 옥시기찜도 주식으로 먹었다. 먹을 것이 없으면 굶다가 소금을 넣어 끓인 맨나물을 먹었다. 특히 양식이 부족한 봄철에는 나무에서 나오는 움을 뜯어다 먹었는데 이것이 맨나물이다. 과거 화전을 하던 시기에는 산에서 나무를 많이 베어내어 산에 나물이 많았다. 산에서 나는 머루, 다래, 송이버섯, 능이버섯, 노루궁뎅이버섯, 밤버섯, 청버섯, 싸리버섯, 참나물, 모시대, 칼나물, 홑잎, 원추리, 쑥, 묘취, 가주대기, 물거리당, 버두쟁이, 미나리싹, 산추리싹, 수리취, 지장보살, 싸리중산이, 잔대뿌리, 고비, 고사리, 질경이 등을 무쳐 먹거나 국을 끓여 먹었다.
[1970년대 이전 가평 지역의 별식]
별식으로는 칡떡, 수제비, 도토리묵, 메밀막국수 등을 먹었다. 칡떡은 칡잎을 뜯어 갈아 놓은 옥수수를 한 숟가락씩 칡잎 위에 떠 올려 싸서 찐 떡이다. 수제비는 옥시기, 애호박, 감자, 밀가루를 넣고 끓인다. 이것은 요즘도 자주 먹는다. 도토리묵은 도토리로 묵을 쑤어 간장에 찍어 먹는다. 적목리에서는 화전에서 기른 메밀로 막국수를 눌러 저녁에 동네 사람들이 모여 국수추렴을 하였다, 당시에는 참나무로 짠 막걸리통인 ‘통자술’이나 한말짜리 통소주를 가져다 놓고 같이 마셨다. 메밀국수는 메밀가루를 익반죽해서 국수틀에 눌러 만든다. 손님이 오면 주로 메밀국수를 대접했는데 특히 겨울에 많이 하였다.
예전에는 먹고 살기 힘들어 술을 담가 먹을 기회는 많지 않았으나 옥시기술을 가끔 담아 먹었다. 이것은 옥수수 싹을 틔워 갈아서 엿기름에 삭혀 사흘 동안 따뜻한 방에 두어 술이 익으면 걸러서 먹었다. 동동주를 담기도 했는데 동동주의 누룩은 밀기울을 반죽해서 만든다. 요즘은 간편하게 쌀 막걸리에 엿기름을 넣은 죽을 쑤어 넣으면 동동주가 된다. 근래에는 대부분 사서 마시며 술을 담그는 경우는 드물다.
[근래의 식생활]
우리나라는 1970년대 초 조생종인 통일벼를 재배하면서부터 절대적인 굶주림에서 벗어났다. 통일벼는 다른 쌀에 비해 밥맛은 떨어졌지만 소출이 많았기 때문에 기아에서 벗어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가평에서도 이때부터 옥시기밥을 먹지 않게 되었다. 대중교통이 발달하고 포장도로가 가평 곳곳을 관통하여 가평에서 서울까지도 1시간이면 도달할 수 있게 되었다. 주민들은 채소 같은 것은 주로 텃밭에서 재배하여 먹으며 필요한 식재료를 살 때는 가평 읍내로 시장을 보러간다. 명절에 제사 음식을 장만하거나 식재료를 많이 살 때 서울에서 구입해 오는 사람도 있다. 과거와 달리 식품 회사에서 만든 식재료도 많이 먹는다. 라면, 커피, 국수, 양조간장, 화학조미료 등 종류가 다양하다.
2005년 북면 도대리에 사는 오정미 가정의 냉장고를 통해 식재료를 보면 다음과 같다. 냉동실에는 만두·소고기·소고기뼈·고춧가루, 냉장고에는 김치·왁짠지·물김치·다진 마늘·양파·콩자반·계란·오이·토마토·감자·된장·배추 등이 있었다. 먹기 좋게 가공하지 않은 마늘·파·양파·고추장은 창고에 보관하였으며, 간장·된장 등 저장 음식은 장독대에 있었다. 과거 주식으로 먹던 호밀밥, 멧수수밥, 조밥, 좁쌀죽, 옥시기밥 옥시기죽, 콩탕, 콩죽 등의 재료는 오늘날 냉장고에서 찾아볼 수가 없다.
오늘날 주식은 밥이며 과거 명절에나 먹어 볼 수 있는 고기나 만두 등은 오늘날 흔하여 언제든지 먹을 수 있도록 냉장고를 채우고 있다. 예전에는 거의 볼 수 없었던 식품 회사의 식재료도 식생활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몇 십 년 사이에 가평 주민들의 식재료는 많이 바뀌었다고 볼 수 있다. 2005년 오정미 가정 1주일 식단을 보면 1월 15일 토요일 아침은 밥과 밑반찬, 점심은 김치 계란말이, 저녁은 밥과 밑반찬이고, 1월 16일 일요일 아침은 밥과 밑반찬, 점심은 향어회, 저녁은 밥과 밑반찬이고, 1월 17일 월요일 아침은 날배추국, 점심은 밥과 밑반찬, 저녁은 날배추국이고, 1월 18일 화요일 아침은 계란찌개, 점심은 김치계란볶음밥, 저녁은 김치찌개이고, 1월 19일 수요일 아침은 김치찌개, 점심은 김치볶음밥, 저녁은 무나물밥이고, 1월 20일 목요일 아침은 미역국, 점심은 짜장면, 저녁은 닭볶음탕이고, 1월 21일 금요일 아침은 무나물국, 점심은 짜장면, 저녁은 시래기국이다.
오정미의 시어머니가 기억하는 식량이 넉넉하지 않았을 때의 주식은 도토리밥이나 호밀밥, 감자밥이다. 도토리밥은 큰 솥에 도토리를 삶아서 물을 여러 번 우려내어 떫은맛을 제거한 후 팥과 콩을 섞어서 먹었다. 쑥과 밀가루를 섞어서 쑥버무리도 많이 먹었다. 보리의 겉껍데기를 벗긴 뒤 속껍데기를 가지고 보리개떡을 먹기도 했다. 오늘날의 일상 음식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오늘날 오정미 집 식단에서 보는 바와 같이 짜장면이 들어가고 향어회, 닭도리탕, 김치찌개, 미역국 등 지역의 생태에 기인한 향토 음식이라기 보다는 우리나라 전국에서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음식으로 바뀌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집에서는 오늘날 입동 전후에 김장을 하여 먹지만 과거의 김장과는 다르다. 오늘날은 갓, 미나리, 새우젓 등이 들어간다. 새우젓은 1970년대 이후 유행처럼 번진 것이다. 과거에 비해 우리의 식생활이 지역의 생태 환경에서 많이 벗어났음을 알 수 있다. 대신 그 자리를 식품 공장의 식재료, 식당에서 볼 수 있는 식당 음식과 같은 유형들이 가정에까지도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오늘날 농촌의 경우에는 대부분 텃밭이 있어서 그곳에서 나오는 채소와 논에서 산출한 농작물을 통해 주식과 부식을 소비한다. 육류와 생선, 밀가루 등 집에서 생산하지 않는 것은 시장에서 구입한다. 가평읍과 같이 농토가 없는 곳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대부분의 식재료를 시장에 의존하고 있다. 과거 지역의 생태에 많이 의존했던 식생활은 오늘날 전국적으로 유통되는 식재료에 의해 지역적 개성이 미미해 지고 있다. 외식도 크게 늘어났다. 돌잔치, 환갑잔치, 결혼식 등 과거 집에서 음식을 장만하여 먹던 의례 음식이나 연회도 오늘날은 전문 음식점에서 대신하고 있다. 이러한 경향을 반영하듯 가평에는 다양한 음식점들이 성업 중에 있으며 한편으로는 현대 가평 주민들의 식생활의 일면을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