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8008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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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化西 |
영어음역 | Yi Hwaseo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전라북도 고창군 흥덕면 후포리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이동희 |
성격 | 동학 농민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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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전라북도 고창군 흥덕면 후포리 |
성별 | 남 |
[정의]
개항기 고창 출신의 동학 농민군.
[활동사항]
이화서는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흥덕면 후포리에서 태어났다. 1898년 12월 이화삼(李化三)이 중심이 되어 일으켰던 흥덕 농민 봉기가 실패한 후, 이듬해 1899년 4월 최익서(崔益瑞)가 중심이 되어 정읍에서 재차 봉기가 일어났는데, 이것을 영학당 사건이라고 부른다. 이들은 정읍의 입암면 왕심리에서 ‘벌외벌양(伐外伐洋)’을 표방하고 고부관아를 습격한 뒤 무장을 점거한 후 고창으로 진격하였으나, 고창성 전투에서 패배하여 17개 군의 농민군 200여 명이 체포되었다. 이화서는 이 봉기에 참여했다가 체포된 뒤 1899년 4월 28일 흥덕에 주재한 광주지방대 사령관에게 이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