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8018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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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碧山祠 |
영어음역 | Byeoksansa |
영어의미역 | Byeoksansa Shrine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월곡리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지영 |
성격 | 사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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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립시기/일시 | 1928년 |
정면칸수 | 3칸 |
소재지 주소 |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월곡리 |
소유자 | 고흥유씨 문중 |
[정의]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월곡리에 있는 유탁(柳濯)을 비롯하여 서홍도(徐弘渡), 유운(柳澐), 안정(安貞), 서일남(徐馹男), 유경원(柳慶元), 유동인(柳東仁), 유철견(柳鐵堅), 안진(安晉), 유여회(柳汝檜), 유지태(柳之泰) 등을 배향하는 일제 강점기 사당.
[개설]
벽산사(碧山祠)에는 유탁(柳濯)을 비롯하여 서홍도(徐弘渡), 유운(柳澐), 안정(安貞), 서일남(徐馹男), 유경원(柳慶元), 유동인(柳東仁), 유철견(柳鐵堅), 안진(安晉), 유여회(柳汝檜), 유지태(柳之泰) 등이 배향되어 있다. 고흥유씨인 유탁의 호는 성재(誠齋), 시호는 충정(忠正)이다. 서홍도는 임진왜란 때 순절했으며 이천서씨이다. 유운은 조선 전기 학자로, 고흥유씨이며 호는 석탄(石灘)이다. 고창에 은둔하면서 학문에 힘쓰고 후진 양성에 진력하였다.
안정은 임진왜란 때 창의한 선비이다. 죽산안씨로,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을 거쳐 금부도사를 역임하고 선략장군에 올랐다. 서일남은 이천서씨이며, 호는 모의재(慕義齋)이다. 1627년(인조 5) 정묘호란 때 유철견 등과 함께 의병과 군량을 모아 의청(義廳)으로 갔으나 화의가 이루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해산하여 무장에 은거하였다.
유경원은 조선 전기의 유학자이자 무신으로 고흥유씨이다.
유동인은 조선 후기 무인으로 무과에 급제하고 1624년(인조 2) 이괄(李适)의 난 때 공을 세워 녹훈되었다. 유철견은 정묘호란 때 창의하여 서일남 등과 군량을 모아 병영에 공급하던 중 화의 소식을 듣고 두문자정하였다. 안진은 정묘호란 때 창의하여 병정을 모집하고 군량을 모아서 병영에 공급하였으며 대첩의 공을 세웠다. 유여회는 이괄의 난이 일어났을 때 창의하여 공을 세웠다. 유지태는 병자호란 때 창의하여 공을 세웠다.
[위치]
벽산사는 고창군 고창읍 교촌리 좌측에 있는 지방도 15호선에서 오른쪽으로 가면 있는 월곡리 상월마을의 상월마을회관 위쪽에 자리 잡고 있다.
[변천]
1928년 고려 공민왕 때의 대신인 유탁을 기리기 위해 세워져서 지금에 이르고 있다.
[형태]
벽산사는 본당 3칸, 내삼문 1동, 숭의당 5칸, 제관실 3칸, 교직사 3칸으로 이루어져 있다.
[현황]
고흥유씨 문중에서 소유 및 관리하고 있으며, 향사일은 음력 9월 13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