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7016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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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孝子崔䃏旌閭碑 |
영어의미역 | Monument to the Filial Piety of Choe Seong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비 |
지역 | 충청남도 공주시 정안면 대산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고순영 |
성격 | 정려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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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립시기/일시 | 1965년 |
소재지 주소 | 충청남도 공주시 정안면 대산리 |
[정의]
충청남도 공주시 정안면 대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효자 최성의 정려비.
[위치]
공주에서 천안 방향으로 가는 국도 23호선로부터 약 21.83㎞ 거리에 정안면소재지가 있다. 면소재지에서 왼쪽 방향으로 가다 보면 대산리가 나온다. 마을 입구에 있는 대산교를 건너 작은 길을 따라 700m 정도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마을 입구 왼쪽에 있다.
[변천]
『충효등록』에 최성이 명정을 받은 과정이 기록되어 있다. 1715년(숙종 41) 7월 14일 충청도 암행어사 이진망(李眞望)이 최성의 효행을 조정에 알리자 왕이 공주목사에게 자세한 사정을 조사하여 보고하게 하였다. 그런데 4년이 지난 1719년(숙종 45)까지도 보고가 이루어지지 않자 공주목사에게 벌을 내리고, 다시 조사해 올리게 하였다. 그러다 1720년(숙종 46) 1월 4일에 명정을 받아 정려가 세워졌다.
최병곤(崔炳坤)이 지은 「정려비문」에 의하면, 효자 최성 정려는 본래 정안면 대산리 득리천(得鯉川) 가에 있었다고 한다. 세월이 지나면서 낡고 허물어지자 선조의 효행 사적이 없어질 것을 걱정한 최성의 7세손 최병각(崔秉珏)이 정려의 중수를 도모하였는데, 재력이 부족하여 정려를 중수하지 못하였다. 대신 1965년에 현재의 위치에 최성의 정려비를 세웠다고 한다.
[형태]
최성의 정려비는 방형의 시멘트 기단 위에 비신을 세우고 지붕을 올린 형태이다. 1965년 최성의 7세손인 최병각(崔秉珏)이 중심이 되어 비석을 세웠으며, 비문은 1964년 최성의 10세손인 최병곤(崔炳坤)이 지었다.
[현황]
원래의 정려는 낡아 허물어졌고, 현재의 위치에 최성의 정려비가 있다.
[의의와 평가]
1998년에 간행된 『효행록』을 통해 최성의 효행 행적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