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132037 |
---|---|
한자 | 元陵神道碑(一七七六) |
영어공식명칭 | Memorial stone for Wonreung(1776) |
이칭/별칭 | 영조 원릉표(英祖 元陵表),영종 표석(英宗 表石) |
분야 | 역사/ 전통 시대 |
유형 | 유적/비 |
지역 | 경기도 구리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최상기 |
[정의]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에 있는 조선 영조와 영조의 비 정순 왕후의 무덤인 원릉의 신도비.
[건립 연혁]
원릉 신도비(1776)는 1776년(정조 즉위)에 세워졌다. 『정조실록(正祖實錄)』에 따르면 영조(英祖)가 사망한 3월 5일 당일 정조의 명에 의해 산릉도감(山陵都監)이 설치되어 4월 19일부터 무덤 조영 공사를 시작했고 7월 3일 작업이 마무리되었는데, 신도비도 이 과정에서 마련되었다.
[형태·구성]
원릉 신도비(1776)는 화강암 재질의 가첨석(加檐石)[지붕돌]·농대석(籠臺石)[비석 받침돌]과 오석(烏石) 재질의 비신(碑身)으로 구성되었고, 전체 높이는 308.4㎝이며 폭은 132.0㎝이다. 가첨석의 높이는 54.3㎝이고 폭은 120.7㎝이며, 팔작지붕의 형태를 갖추었는데 지붕 4면의 끝이 윗쪽으로 강하게 솟구쳐 경쾌한 느낌을 준다. 비신의 높이는 174.6㎝이고 폭은 66.0㎝이며, 상태는 전반적으로 양호하다. 앞면에는 전서(篆書)로 '조선국 영종대왕원릉(朝鮮國 英宗大王元陵)'이라고 썼고, 영조의 생몰일·책봉일·즉위일 등을 기록한 뒷면의 음기(陰記)는 해서(楷書)로 썼는데 정조의 글씨이다. 농대석의 높이는 79.5㎝이고 폭은 132.0㎝이며, 문양을 새기지 않았다.
[가치 및 의미]
원릉 신도비(1776)는 1682년(숙종 8)에 건립된 영릉(寧陵)[효종(孝宗)과 효종의 비 인선 왕후(仁宣 王后)의 무덤]의 표석 이후 지속적으로 세워진 조선 왕실 무덤의 능표 중 하나이다. 능표의 양식은 점점 간략화되어 영조·정조 시기에 확립되었는데, 원릉 신도비(1776)는 일정하게 완성된 능표의 모습을 잘 보여 주는 문화유산이다. 아울러 정조가 직접 비문을 쓴 일은 이후의 국왕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