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1320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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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元陵神道碑(一八九零) |
영어공식명칭 | Memorial stone for Wonreung(1890) |
분야 | 역사/ 전통 시대 |
유형 | 유적/비 |
지역 | 경기도 구리시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최상기 |
[정의]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에 있는 조선 영조와 영조의 비 정순 왕후의 무덤인 원릉의 신도비.
[건립 연혁]
원릉 신도비(1890)는 1890년(고종 27)에 세워졌다. 『고종실록(高宗實錄)』에 따르면, 1890년 1월 3일 고종은 종묘에서 영종(英宗)의 묘호(墓號)로 영조 대왕(英祖大王)을 새롭게 올렸고 1월 27일에는 원릉 표석의 글을 직접 쓰겠다는 명을 내렸다. 이런 일들을 통해 신도비가 영조의 새로운 묘호 추상(追上)[임금이나 왕비가 죽은 뒤에 존호를 올리던 일] 과정에서 마련되었음을 알 수 있다.
[형태·구성]
원릉 신도비(1890)는 화강암 재질의 가첨석(加檐石)[지붕돌]·농대석(籠臺石)[비석 받침돌]과 오석(烏石) 재질의 비신(碑身)으로 구성되었고, 전체 높이는 311.2㎝이며 폭은 134.0㎝이다. 가첨석의 높이는 58.0㎝이고 폭은 117.9㎝이며, 팔작지붕의 형태를 갖추었는데 지붕 4면의 끝이 윗쪽으로 강하게 솟구쳐 경쾌한 느낌을 준다. 비신의 높이는 174.1㎝이고 폭은 70.0㎝이며, 상태는 전반적으로 양호하다. 앞면에는 전서(篆書)로 '조선국 영조대왕원릉(朝鮮國 英祖大王元陵)'이라고 썼고, 새로운 묘호의 추상 과정 등을 기록한 뒷면의 음기(陰記)는 해서(楷書)로 썼는데 고종의 글씨이다. 농대석의 높이는 79.1㎝이고 폭은 134.0㎝이며, 문양을 새기지 않았다.
[가치 및 의미]
원릉 신도비(1890)는 1682년(숙종 8)에 건립된 영릉(寧陵)[효종(孝宗)과 효종의 비 인선 왕후(仁宣 王后)의 무덤]의 표석 이후 지속적으로 세워진 조선 왕실 무덤의 능표 중 하나이다. 능표의 양식은 점점 간략화되어 영조·정조 시기에 확립되었는데, 원릉 신도비(1890)는 앞 시기에 확립된 양식이 잘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 준다. 아울러 18세기 정조 이래 국왕이 직접 왕실 무덤의 비문을 쓰는 사례가 늘어나는데, 원릉 신도비(1890)는 그 맥을 잇는 중요한 문화유산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