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401867 |
---|---|
한자 | -堂山祭 |
영어의미역 | Village Tutelary Festival in Myeongsa Village |
분야 |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무형 유산 |
유형 | 의례/제 |
지역 | 경상남도 하동군 청암면 명호리 명사마을 |
집필자 | 김성채 |
의례 장소 | 경상남도 하동군 청암면 명호리 명사마을 |
---|---|
성격 | 마을 신앙|당산제 |
의례 시기/일시 | 음력 1월 15일 |
신당/신체 | 당산 할배[느티나무]|당산 할매[돌무덤] |
[정의]
경상남도 하동군 청암면 명호리 명사마을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개설]
명사마을 당산제는 매년 음력 정월 대보름 아침에 청암면 명호리 명사마을 입구에 있는 당산 할매와 뒷산 중턱의 당산 할배에서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이다. 명사마을은 유명한 절이 있었던 마을이라서 붙여진 이름이다.
[연원 및 변천]
명사마을 당산제의 연원에 대해서 정확히 기억하는 제보자는 찾을 수 없었으나 일제 강점기 공동체 신앙에 대한 탄압으로 잠시 중단된 것을 제외하고는 마을이 생기고 난 이래 계속되었다고 추측하고 있다. 본디 음력 섣달 그믐날 밤[정월 초하루 자시]에 당산제를 올렸으나 마을 인구가 점차 줄고 노령화되어 제의에 어려움이 따라 10여 년 전부터 제의 일시를 정월 대보름 아침으로 옮겨서 모시고 있다.
이와 함께 당산제의 금기가 약화되었으며 제관 선출 방식도 변화된 것으로 보인다. 그 이전에는 당산제를 준비하기 위해서 제관이 삼일 정도 바깥출입을 삼가고 집안에서 정진하여야 하였는데, 이 시기를 즈음하여 하루 정도만 당산제를 준비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또한 마을 회의를 통해 마을 내 깨끗한 사람을 제관으로 추대하던 방식에서 이장이나 새마을 지도자 등이 당산제의 제관을 겸직하도록 하였다. 명사마을의 당산제는 인근 자연 마을인 사동, 점마와 함께 지내고 있으며 2010년부터는 정부 지원을 받아 당산제를 올리고 있다.
[신당/신체의 형태]
명사마을에는 두 곳에 당산을 가지고 있으며 ‘당산 할배’와 ‘당산 할매’로 불린다. ‘당산 할배’의 신체는 뒷산 중턱에 있는 나무인데 수령이 약 200년 정도 된 느티나무이며, ‘당산 할매’는 마을 입구에 위치해 있으며 돌무덤이다.
[절차]
음력 정월 열 나흗날이 되면 당산을 정화하는 것으로 당산제 준비를 시작한다. 모든 의례는 제관인 이장이 담당하는데 뒷산 ‘당산 할배’부터 대나무를 세워 금줄을 제장 주위에 두르고 황토를 준비하여 사방에 뿌려 둔다. 이후 ‘당산 할매’에도 금줄을 세우고 황토를 뿌린다. 이후 제수를 준비하기 위해 장에 나간다. 제물 구입과 제수 마련은 마을의 깨끗한 안어른을 추대하여 맡기는데 제관 집에서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당산제에 진설하는 제물은 주로 밥, 탕, 나물, 전, 떡, 포, 과일, 돼지고기 등 기제사와 비슷하다. 2010년에는 정부 지원을 받아 재정이 넉넉했기 때문에 돼지머리를 구입해서 올렸다. 제수 장만을 하고 난 후에는 깨끗한 곳에 보관해 둔다.
정월 보름 아침이 되면 목욕재계를 하고 제관은 축문을 만든다. 축문은 마을에서 대대로 내려오는 양식으로 한다. 당산제는 뒷당산부터 의례를 행하는데 의례 절차는 일반적인 기제사 절차를 따른다. 주로 이장이나 노인회장이 초헌관과 아헌관을 맡지만 2010년에는 면장이 초헌관을 하였으며 군의원이 아헌관을 하였다. 제의 순서를 간략하게 살펴보면 분향→ 초헌→ 독축→ 아헌→ 종헌→ 첨작→ 음복 등의 순으로 이루어진다. 제의가 끝나면 축문을 태우고 마을 사람 중 개인적으로 소지를 올리고 싶은 사람은 나와서 소지를 올린다.
[부대 행사]
과거 정월 초하루에 지내던 시기에는 별다른 부대 행사가 없었지만 정월 대보름으로 제일을 옮기고 난 후에는 마을 사람들이 모여 풍물을 치며 한 해의 복과 건강을 기원하는 잔치를 벌이고 있다.
[현황]
명사마을의 당산제는 제관 선출 방식, 제의 일시 등이 변하긴 하였지만 지금까지 유교식 제의의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특히 2010년부터는 지방 정부의 지원을 받아 재정적으로 어려움 없이 당산제를 지낼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