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40187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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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葦台-洞祭 |
영어의미역 | Village Tutelary Festival in Witae Village |
분야 |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무형 유산 |
유형 | 의례/제 |
지역 |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위태리 위태마을 |
집필자 | 김성채 |
의례 장소 |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위태리 위태마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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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마을 신앙|동제 |
의례 시기/일시 | 음력 1월 15일 |
신당/신체 | 할매 당산[중촌 느티나무] |
[정의]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위태리 위태마을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개설]
위태마을 동제는 매년 음력 정월 대보름 아침에 옥종면 위태리 위태마을에 있는 할매 당산[중촌 느티나무]에서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이다. 위태마을은 지리산의 5대 주산 중의 하나인 사림산 기슭에 자리한 마을이다. 마을 앞으로 호계천과 위태천이 흐른다. 위태마을에는 조선 후기의 선비인 하덕망(河德望)[1664~1743]의 묘소가 있다.
[연원 및 변천]
동제의 연원에 대해서 정확히 기억하는 제보자는 찾을 수 없었다. 제의는 기제사와 비슷한 유교식 축문을 읽고 고사를 지내는 형태[독축고사형(讀祝告祀形)]로 치러진다. 몇 년 전까지는 마을에서 초상이나 해산 등 부정한 일이 없는 사람을 제관으로 선정하여 동제를 지냈다. 그러나 가구 수가 줄고 노령화되어 책임질 사람이 없어졌기 때문에 마을 주민이 함께 지내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이 시기에 ‘뒷산 느티나무’, ‘중촌 느티나무’, ‘마을 어귀 팽나무’ 이렇게 세 군데였던 당산도 한 곳으로 합사하여 지내고 있으며, 아울러 금기도 약화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아직까지 동제 제관들은 험한 일은 하지 않는 등의 금기를 지키고 있다.
[신당/신체의 형태]
위태마을 당산은 ‘뒷산 느티나무’, ‘중촌 느티나무’, ‘마을 어귀 팽나무’ 등 세 군데였기 때문에 삼당산이라 칭한다. 중촌에 위치한 당산은 ‘할매 당산’으로 여기고 있으며, 나머지 두 당산은 ‘할배 당산’이라 한다. 동제를 지낼 때는 뒷산→ 중촌→ 마을 어귀 순으로 지냈는데 이렇게 지내는 것이 번거롭기 때문에 몇 년 전부터 ‘중촌 느티나무’ 한 군데로 합사해서 지내고 있다.
[절차]
위태마을 제관은 매년 동지에 개최되는 ‘마을 총회’에서 정하는데 주로 이장, 노인회 회장, 새마을 지도자 등 마을의 대소사를 맡은 사람들이 담당한다. 동제 준비는 전날 장을 보는 것으로 시작한다. 제관 중에서 한 명을 선정하여 장을 보게 하는데 구입하는 제물은 돼지고기, 조기, 민어, 돔, 전어, 떡[시루떡], 감, 배, 사과, 유과, 한과 등 기제사와 비슷하나 ‘중촌 느티나무’를 ‘당산 할매’라 여기어 탕국 대신에 미역국을 준비한다.
어두워지면 당산과 제관 집 앞에 금줄을 치고 준비한 황토를 뿌려 액운을 막는다. 저녁이 되면 제관들이 목욕재계를 하는데, 예전에는 찬물로 목욕을 했지만 지금은 목욕을 마친 후 찬물 세 바가지를 끼얹는 것으로 대신한다. 아침이 되면 당산으로 이동하여 제물을 묻을 구덩이를 파고 제물을 진설하는데, 이것은 제관이 주관한다. 의례 절차는 일반적인 기제사 절차를 따라 분향→ 초헌→ 아헌→ 종헌→ 첨작의 순으로 진행한다. 이후 진설한 음식을 조금씩 떼어 준비한 구덩이에 묻고 제관이 음복을 하면 제의가 끝난다.
[부대 행사]
본디 위태마을 동제는 정월 대보름에 치러지기 때문에 정월 대보름 행사의 일환으로 동제가 끝나면 한 해 동안 마을의 무사 안녕과 풍농을 기원하고 술과 노래, 농악으로 마을 잔치를 벌였다고 한다.
[현황]
위태마을의 동제는 제관의 변화, 신체의 축소를 거치긴 하였지만 지금까지 유교식 제의의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또한 3년 전부터는 제의 시간을 변경하여 마을 사람 전체가 참여하여 동제를 지내고 있다. 위태마을에는 동제를 위한 동답이 있어서 그 수익금을 재원으로 해서 지냈으나, 새마을 운동 당시 마을의 발전을 위해 처분하여 그 이자를 가지고 지금까지 당산을 모시고 있다. 또한 마을 주민들의 자발적인 기부금으로 일정 금액의 마을 기금이 조성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