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3004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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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海南鳳鶴里新今遺蹟 |
영어공식명칭 | Bonghakri Singeum Yujeok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터 |
지역 | 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봉학리 416-25 |
시대 | 고대/삼국 시대 |
집필자 | 정영희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02년 12월 9일~2003년 9월 6일 - 해남 봉학리 신금 유적 호남문화재연구원에서 문화유적 지표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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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02년 - 해남 봉학리 신금 유적 호남문화재연구원에서 시굴 조사 |
소재지 | 해남 봉학리 신금 유적 - 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봉학리 416-25 |
성격 | 주거 유적 |
지정 면적 | 4~8㎡ 이하[소형]|8~36㎡ 이하[중형]|56~60㎡ 이하[대형] |
[정의]
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봉학리 신금마을에 있는 삼국시대 주거 유적.
[개설]
해남 봉학리 신금 유적은 해남군 삼산면 봉학리 신금마을에 있는 삼국시대 주거 유적이다. 2002년 호남문화재연구원이 발굴 조사를 실시하여 많은 유물이 출토되었다.
[변천]
해남 봉학리 신금 유적은 2000년 호남문화재연구원에 의해 실시한 삼산-해남 간 도로 확장[국도 제13호선] 및 포장 공사 구간 내 문화유적 지표조사를 통해 ‘봉학리 신금 유물산포지’로 명명되어 처음 알려지게 되었다. 이후 도로 공사 진행이 추진됨에 따라 2002년 호남문화재연구원에 의해 시굴 조사되었다.
[위치]
해남 봉학리 신금 유적은 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봉학리 신금마을 뒤편 구릉 일원이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해남 봉학리 신금 유적은 삼산-해남 간 도로 확장[국도 제13호선] 및 포장 공사로 인해 발굴 조사되었다. 2002년 12월 9일부터 2003년 9월 6일까지 호남문화재연구원에서 발굴 조사를 실시하였다. 삼국시대 주거지 72기, 수혈(竪穴) 19기, 구(溝) 9기가 조사되었다. 해남 봉학리 신금 유적은 해발 17~27m의 구릉에 분포하는데, 구릉 말단부에서는 신금 고분으로 명명된 옹관묘가 확인되어 동일한 시기에 묘역과 생활 공간이 분리된 취락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주거지는 방형의 평면 형태로 규모는 소형[4~8㎡ 이하]과 중형[8~36㎡ 이하], 대형[56~60㎡ 이하]으로 나누어진다. 내부 시설은 무주공식과 사주식의 기둥 배치와 벽구, 배출구, 벽체, 부뚜막 등을 갖추고 있었다. 외부 시설은 주거지 주변을 두른 외구 시설인 외구부가형주거지(外溝附加形住居址)가 확인되었다. 특히, 여러 채의 주거지가 화재로 폐기되어 내부 시설의 원형 복원에 도움을 주었다. 목재와 점토를 혼용한 벽체 구조와 함께 점토를 주재료로 사용한 부뚜막 구조가 잘 남아 있는 편이었다. 또한 부뚜막에서는 여러 의례 행위가 확인되었다. 철기를 매납하는 조왕신 관련 의례 행위와 토기를 파쇄하는 부뚜막 해체 관련 의례 행위가 관찰되었다.
해남 봉학리 신금 유적에서 출토된 유물은 토기류, 철기류, 석기류 등이 확인되었다. 토기류는 호형토기(壺形土器)[불룩단지], 바리 모양의 발형토기(鉢形土器), 계란 모양의 장란형토기(長卵形土器), 시루, 독 모양의 옹형토기(甕形土器), 유공광구소호(有孔廣口小壺), 경배, 고배, 뚜껑, 완 등 취사 용기와 저장 용기, 배식기가 주를 이루었다. 철기류는 철부, 철겸, 철도자 등 농·공구류와 석기류, 토제품, 탄화곡물이 출토되었다. 출토 유물에서 주목되는 것은 단경호의 승문계 타날문 속성이 3세기대로 편년되는 유구에서 확인되었다는 점이다. 당시 영산강 유역권에서 이러한 토기는 5세기대에 유행하는 문양 속성인 점으로 볼 때 자체 생산품보다는 외부 유입 토기일 가능성이 제시되었다. 이것은 해남 봉학리 신금 유적과 주변 지역간의 문화적 교류가 이루어졌음을 시사한다.
[현황]
해남 봉학리 신금 유적 주변은 현재 국도 제13호선이 건설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해남 봉학리 신금 유적은 묘제, 패총 중심으로 논의되었던 해남 반도의 고대 문화상을 보완해 줄 수 있는 첫 번째 생활 유적 조사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해남 봉학리 신금 유적은 주변으로는 생활 유적으로 추정되는 유물 산포지와 분묘 유적인 옹관 고분과 전방후원형 고분까지 다양한 유적이 분포하고 있어 해남 봉학리 신금 유적을 중심으로 하는 고대 지역 정치체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