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300085
한자 鳳壑里
영어공식명칭 Bonghak-ri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봉학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문종안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연표보기 - 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봉학리 개설
성격 법정리
면적 3.3㎢
가구수 105가구
인구[남/여] 212명[남자 110명|여자 102명]

[정의]

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봉학리(鳳壑里)는 마을 뒷산이 매가 나는 지형이라 하여 ‘비매’, ‘비산’이라 부르다가 일제강점기에 ‘봉학(鳳壑)’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형성 및 변천]

봉학리는 본래 진도군 삼촌면에 속하였다가 1906년(광무 10) 해남군에 편입되었다. 1914년 일제의 부군면 통폐합에 따라 수복리, 옹암리, 송정리의 각 일부 지역을 병합하여 해남군 삼산면 봉학리로 편입되었다. 현재 봉학마을, 신금마을, 용암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봉학마을은 1400년대 중엽에 김해김씨 김세귀(金世貴)가 최초로 들어왔다고 한다. 김세귀는 해남읍 고도리에서 거주하다가 백야리로 옮기고, 다시 은인리로 이주하였다가 마을 터가 남향이고, 바람이 잘 통하여 석간수가 나와 살 만한 곳이라 정착하였다고 한다.

[자연환경]

봉학리에는 국도 제13호선을 기준으로 서쪽은 마을이 모여 있고, 동쪽은 농지가 발달되어 있다. 삼산천이 농업용수로 활용되고 있다.

[현황]

2018년 10월 31일 현재 면적은 3.3㎢이며, 봉학리, 신금리, 옹암리의 3개 행정리에 105가구, 212명[남자 110명, 여자 102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주 소득원은 쌀이며, 특작물은 마늘이다. 마을 중앙에서 동북쪽에서 남서쪽으로 국도 제13호선이 지나고 있다.

봉학리에는 군사독재 시절 독재에 항거했던 김남주 시인의 생가가 복원되어 있다. 김남주 시인 생가는 마을 부녀회에서 관리하고 해남군에서 감독하고 있다.

봉학리 신금 유적(鳳壑里新今遺蹟)삼산-해남간 도로 확장 및 포장공사로 인하여 발굴 조사되었다. 해남 봉학리 신금 유적은 2002년 12월 9일부터 2003년 9월 6일까지 발굴 조사가 진행되었으며 토기류와 철기류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신금 유적은 삼국시대 생활유적으로서 그동안 묘제 중심으로만 논의되었던 해남반도의 고대 주거문화를 밝힌 첫 번째 조사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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