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3013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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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文學 |
영어공식명칭 | Literature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
지역 | 전라남도 해남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정성경 |
[정의]
전라남도 해남 지역에서 언어와 문자를 매체로 인간의 사상과 감정을 표현하는 창작 활동.
[개설]
전라남도 해남 지역에서 문학의 범주는 해남 출신 문인이 창작한 문학 작품뿐만 아니라, 외지 문인이 해남으로 이주하여 살면서 창작한 문학 작품이나 여행을 와서 해남의 자연환경을 노래한 문학 작품을 모두 포함한다. 해남 지역의 문학에 대해 시기별로 크게 고전문학과 근대문학·현대문학으로 나누어 살펴보고 더불어 자생적인 지역 문학 단체도 소개한다.
[근대 이전의 해남 문학]
전라남도 해남 지역은 고려시대 이전까지는 중앙정부의 통치가 미치지 않는 오지였으며 이후에도 지리적 여건상 학문의 여건이 취약하여 이렇다 할 문인의 자취를 찾기가 쉽지 않다.
문헌상 해남 문학의 뿌리는 15세기 무렵부터 찾을 수 있는데, 『표해록(漂海錄)』의 저자인 금남(錦南) 최부(崔溥)[1454~1504]가 해남 지역에 터를 잡으면서 문학적 토양이 마련되었다. 최부는 지금의 전라남도 나주시 출신이지만 해남 지역을 근거지로 활동하였고 윤효정(尹孝貞)[1476~1543]과 조선 중기 문인인 임억령(林億齡)[1496~1568]의 숙부인 임우리(林遇利)[?~?] 등 많은 후학을 길렀다. 임우리는 임억령이 어렸을 때 직접 공부를 가르쳤으며 나중에 ‘호남 시학(詩學)의 스승’으로 불린다. 최부의 다른 제자 유계린(柳桂鄰)[1478~1528]의 둘째 아들 미암(眉巖) 유희춘(柳希春)[1513~1577]은 『미암일기(眉巖日記)』로 널리 알려졌다. 또 유희춘의 처 덕봉송씨 역시 여성 시인으로서 독보적인 시 세계를 열었다.
백광홍(白光弘)[1522~1556]은 백세인(白世仁)의 첫째 아들로 태어났는데 시 쓰기에 능했다. 백광홍의 작품은 전쟁 등을 겪으며 많이 유실되었는데, 후손이 모아 엮어 『기봉집(岐峰集)』이라고 이름 붙여 출간하였다. 백광홍에게는 동생 백광안(白光顔), 백광훈(白光勳)과 사촌인 백광성(白光城)이 있었는데 모두 당대에 쟁쟁한 시인이었다.
조선 후기에는 윤선도(尹善道)[1587~1671]가 해남 지역으로 유배를 오면서 조선시대 시문학의 성지가 되며 윤선도의 증손자인 공재 윤두서(尹斗緖)[1668~1715]에게 이어진다. 윤두서는 조선시대 화가로 널리 알려졌으나 시화와 서예에도 조예가 깊었으며 사설시조 「전가서사(田家書事)」 같은 유명한 작품도 남겼다. 그 뒤로는 초의선사(草衣禪師)가 차에 관해 쓴 시 「동다송」이 해남 문학의 맥을 잇고 있다.
19세기에 접어들면 취죽헌(翠竹軒) 박백응(朴伯凝)[1525~?]의 후손인 박모(朴模)[1828~1900]가 마산면에서 휴학을 양성하였으며 「심성론」, 「관수론」 등의 논문, 「삼호재기」, 「성인당기」, 「장촌 동기」 등의 시와 서(書)와 같은 많은 작품과 함께, 유고집으로 『노화집(蘆花集)』을 남겼다. 이휴(李烋)[1875~1930]는 『낭해집(朗海集)』이라는 문집을 남겼는데, 문집에는 오언절구와 칠언율시, 오언고시, 부, 서, 발, 잡서, 제문, 행장, 유사 등 다양한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최경휴(崔敬休)[1814~?]는 두 권의 유고집 『남전유고(藍田遺稿)』를 남겼는데, 유고집의 내용은 「용산삼십팔영(龍山三十八詠)」 등의 시편과 서, 행장, 제문, 잡록 등 다양한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비슷한 시기에 활동한 박모, 이휴, 최경휴를 한데 묶어 해남삼학사라 불렀다.
[근대와 현대의 해남 문학]
일제강점기에 현산면 읍호리에서 태어난 심호(心湖) 이동주(李東柱)[1920~1979]는 1935년 『매일신보』에 「추억」을 발표하면서 활동을 시작하여 해방 이후, 특히 1950년대에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이동주는 우리 민족의 집단무의식 속에 원형질적 요소로 내재해 있는 고전적인 정서들을 시로 형상화하였다는 평을 듣는데, 대표시로는 해남 지역의 대표적인 놀이를 통해 한국인의 고전적이고 토속적인 정감을 형상화한 「강강술래」가 있다. 이동주에 이어 화원면 마산리 출신 박성룡(朴成龍)[1930~2002]이 1956년에 등단하여 주로 전통적인 미의식과 자연의 질서를 추구하는 시를 발표하였는데, 초기 작품에서는 우주의 근원적 생명을 예각화된 지성과 감각적인 수법을 통해 형상화한 반면, 후기에는 인생의 밑바닥에서 한과 시름을 달래며 살아온 서민층 일반의 감성을 대표하기도 하였다.
1960년대는 현실 참여와 사회비판적 목소리가 드높던 시기여서 현실 참여적인 문학이 활발하게 펼쳐졌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순수문학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시기이기도 하였다. 이 시기의 해남 출신 문인으로는 박진환(朴鎭煥)[1936~], 박문재(朴文在)[1941~], 윤재걸(尹在杰)[1947~], 윤금초(尹今初)[1941~], 김준태(金準泰)[1948~] 등이 있다.
1970년대는 급속한 산업화에 따른 소외 문제 등 부작용에 대한 반성과 더불어, 유신체제에 대한 저항과 민주화 열기가 문학에 직접적이고 치열한 방식으로 나타났다. 이 시기에 해남 출신 문인으로는 노향림[1942~], 오영빈[1942~], 김남주(金南柱)[1946~1994], 고정희(高靜熙)[1948~1991], 백추자[1947~], 최일환[1939~] 등이 있다. 또한 1976년에는『장길산』을 집필하던 소설가 황석영(黃晳暎)[1943~]이 해남으로 이사 와서 집필 활동과 문화운동을 전개하였는데, 훗날 회고를 통해 해남 지역에서 생활한 경험이 『장길산』 집필에 소설적 긴장감과 생동감을 불어넣어 주었다고 밝혔다.
1980년대는 민중문학이 세력을 형성한 시기인데, 해남 출신 민중문학 계열의 대표적인 시인으로는 김준태와 김남주를 들 수 있다. 김준태는 농민계급 문제를 파고들어 공동체적 삶이 지닌 생명성이 경제적 모순 속에서 훼손당하고 있는 현실을 날카롭게 바라보았다. 대표작으로 「참깨를 털면서」 등이 있다. 또 김남주는 사회적 비판 의식과 구비(口碑)적 상상력으로 무장한 시인으로 평가받는데, 대표 시로는 5·18광주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학살」, 「옥좌」 등이 있다.
1980년대에 가장 주목받은 시인으로는 단연코 황지우(黃芝雨)[1952~]를 꼽을 수 있다. 황지우는 독자의 고정관념을 파괴하면서 독자에게 충격을 주었다. 황지우는 당시의 정치 현실을 풍자하면서 그 현실 속에서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비추어 스스로를 반성하게 하였다. 또 여태껏 시도된 적이 없는 낯선 소재와 표현 양식을 제시하여 새로운 독서 방법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시켰으며 시적 정서의 포괄성을 유지하였다.
여성주의 시인으로는 고정희가 있다. 고정희는 짧은 생애 동안 기독교적 세계관의 지상 실현을 꿈꾸기도 하고 민족·민중문학에 대해 치열하게 모색하였으며 여성해방을 지향하는 페미니즘문학의 선구자적 작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적 탐구를 보여 주었다. 1985년 해남으로 이주해 온 김지하(金芝河)[1941~]는 1986년 해남 생활을 토대로 생명사상을 노래한 시를 엮은 『애린』을 발표하였다. 이 외에도 1980년대부터 활발하게 활동한 시인으로는 이지엽[1958~], 이소희[1938~], 윤삼현[1953~], 임원식[1941~], 박덕훈[1957~], 김기두[1931~], 임정순[1938~], 신용선[1945~2008], 김경윤[1957~] 등이 있다.
또한 소설가로는 박정요[1956~2012], 최성배[1952~], 박지리[1985~], 양원옥[1952~], 홍광석[1951~] 등이 있으며, 아동문학가는 곽해룡[1965~], 정용채[1927~2009], 윤기현[1949~], 윤삼현[1953~], 배승[1953~], 윤영훈[1954~], 이환채[1951~] 등이 있다. 희곡작가로는 김봉호[1924~2003], 김남[1944~], 이중기[1937~] 등이 활동하였다. 수필가는 문정길[1939~], 박갑천[1932~1999], 법정[1932~2010], 서양순[1935~] 등이 활동하였고, 왕성한 저작 활동과 강의 등 다양한 방법으로 해남 문학을 알리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해남 지역의 문학 활동]
1950년대에는 두륜문학회가 결성되어 지역 문학의 싹을 틔웠다. 두륜문학회는 민재식, 이정훈, 윤상현, 이광정, 김남용 등이 지역의 문화와 예술에 깊은 관심을 두고 창립한 조직으로, 해남 문학 활동에 활기를 불어넣고 지역 문화 활동의 초석을 다지고자 노력하였다. 두륜문학회는 1971년까지 활동하였으며 동인지 『두륜문학』을 총 11집까지 발간하였다.
1984년 5월에는 윤삼현, 유춘홍, 박노경, 용진호, 정요채 등이 주축이 되어 남촌문학회가 창립되었다. 남촌문학회는 초대 회장으로 윤삼현, 총무 유춘홍이 활동하였는데 1986년 동인지 『남촌문학』 1호를 발간하고 사라졌다.
1972년에는 1월에 희곡작가 김봉호가 주축이 되어 한듬문학회를 결성하여 7월 31일 한국문인협회 해남지부로 인준을 받았으며 김봉호가 초대 지부장으로 취임하였다. 『두륜문학』을 계승할 것을 표방하며 동인지 『한듬문학』을 새로 발간하였다. 『한듬문학』은 2002년 제18집을 끝으로, 2003년 제19집부터는 『해남문단』으로 명칭을 변경하여 매년 발간하였고 2018년 현재 제34집이 발간될 예정이다. 주요 활동으로는 청소년범죄예방글쓰기대회, 심호이동주문학제 및 학술세미나, 백일장, 고산문학축전, 서산대사나라사랑글쓰기대회 추진 지원, 해남예술제 지원, 전국시조백일장 개최, 법사랑글쓰기대회, 시조학당 운영 등이 있다.
1988년 12월 17일에는 해남문학회가 창립되었는데, 초대 회장 정용채, 부회장 윤병진·임문식·천병국·정동수가 임명되었고 사무국장은 김정복이 맡았다. 1988년에는 동인지 『해남문학』을 발간하였고, 지금까지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땅끝문학회는 1999년 9월 9일 김경윤, 김경옥, 이봉환, 문재식, 박태정 등이 주축이 되어 해남YMCA에서 창립하였다. 초대 회장에는 김경윤, 사무국장에는 박태정이 활동하였으며 2002년에 처음 발간한 동인지 『땅끝문학』은 2018년 현재 제17호에 이르렀다. 2000년에는 민족시인김남주기념사업회를 창립하는 데에 주축이 되었으며, 매년 2월에는 김남주추모제, 가을에는 김남주문학제를 개최하고 있다. 2004년에는 지역 여성운동 그룹인 ‘해남여성의 소리’와 함께 고정희기념사업회를 창립하였고, 매년 6월에 고정희문화제도 열고 있다.
2009년 3월에는 미암문학회가 창립되었다. 초대 회장 임상영, 부회장 강양원, 사무국장 이순자 등이 주축이 되어 활동하고 있으며 다양한 지역문화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한편, 해남 문학 자원을 보존하고 문학인의 창작 산실 겸 지역민의 평생학습 공간을 마련하고자 땅끝순례문학관이 2017년 12월 27일 문을 열었다. 2017년부터 예쁜손글씨[캘리그라피]공모전을 매년 열고 있으며 2018년에는 땅끝순례문학관 전국MP3시낭송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해남문학의 의의]
해남 문학의 뿌리는 15세기 무렵부터 찾을 수 있다. 이후로 해남 출신 문인뿐만 아니라 해남으로 이주한 외지 문인도 해남 지역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거나 풍속을 바탕으로 작품을 창작하여 해남 문학이 풍성하게 열매맺는 토양이 되었다. 그러한 전통을 바탕으로 해남 지역 문인과 해남 문학 동인들이 벌이는 여러 활동은 지역민이 문학을 통하여 정체성을 확립하고 자부심을 느낄 수 있게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