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200282 |
---|---|
한자 | 梨陰院 |
영어공식명칭 | Ieumwon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 |
지역 | 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 강명리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김재현 |
[정의]
조선 전기 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 강명리에 있던 숙식을 위한 편의 시설.
[개설]
원(院)은 지방 관아나 역(驛) 주변, 각 역의 적절한 중간 지점 등 요충지에 설치되어 일반 행인들에게 숙식 편의를 제공한 숙박 시설이다. 산간 벽지에서는 사원이 원의 역할을 수행하기도 하였다. 고려 때부터 설치되었던 원은 역제(驛制)에 포함되지는 않았다. 1587년 『함주지(咸州誌)』가 편찬될 당시 함안군에는 월촌원(月村院)을 포함한 7곳, 칠원현에는 멸포원(蔑浦院)을 포함한 2곳의 원명(院名)만 보인다. 하지만 1757년 『여지도서(輿地圖書)』가 편찬될 때 함안군에는 동쪽 20리[약 7.85㎞] 안인(安仁)에 있었다는 우곡원(隅谷院)이란 원명은 보이지 않고 6곳의 원명만 보인다.
[제정 경위 및 목적]
원(院)은 일반 행인의 숙식뿐 아니라 왕이나 관료가 지방을 순행할 때 각종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 설치되었다. 이곳을 통해서 지방의 민심이나 지방관과 관련된 자료를 수집하기도 하였다. 이음원(梨陰院)은 함안군 함안면에서 진북면으로 왕래하던 사람들의 편의를 위해 설치된 것으로 추정된다.
[관련 기록]
『함주지』 권1 역원(譯院) 조에는 "이음원은 군아의 남쪽 7리[약 2.75㎞] 상리의 와요동에 있었지만 지금은 폐훼된지 오래되었다[梨陰院(在郡南七里上里之瓦窯洞廢毁已久]"라고 기록되어 있다.
[내용]
이음원은 조선 시대 함안군 상리의 와요동에 설치되었다고 전하지만 『함주지』의 상리 8곳 방(坊) 중에는 '와요동'이란 행정 명이 보이지 않아 구체적인 장소를 확인하기는 어렵다. 다만 함안군의 상리가 현재의 함안면에 해당하므로 강명리 일대로 비정할 수 있다.
[변천]
임진왜란 전후 시기에 각지의 원은 점차 쇠락되었는데, 이음원도 『함주지』가 편찬되기 이미 오래전에 황폐화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