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20029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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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鄕戰 |
영어공식명칭 | Hyangjeon|Confrontation Between Local Powers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경상남도 함안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양미숙 |
[정의]
조선 후기 함안 지역의 향권 장악을 둘러싼 재지 세력과 신흥 세력 간의 대립.
[역사적 배경]
함안 지역에서 남당과 북당이 형성된 것은 북당의 영수 조윤수가 향권을 장악하려는 데서 기인한다. 본래 남당과 북당은 당파적 색깔에 의해서 구분되는 것이 아니었다. 당시 조윤수가 함안 북쪽 내대산면에 거주하였고, 그의 반대파들 대부분이 남쪽에 거주한 것에서 유래하였다. 호방(戶房)을 중심으로 한 향리(鄕吏) 사회는 18세기 이후 이방(吏房) 중심 체제로 바뀌었다. 이방은 인리(人吏)·통인(通引)·사령(使令)을 통할하는 관리였다. 함안 지역의 향리직은 함안 조씨·진양 강씨·창원 구씨가 독점하였다. 특히 함안 조씨 내에서 조영환·조계방·조기정 집안이 주도하였다.
[경과]
함안 지역의 향전(鄕戰)은 이방의 임명을 둘러싼 남당과 북당의 대립이 표출된 사건이다. 북당의 조윤수가 조계방을 이방에 임명하려 하자, 남당의 이종성·조우식 등은 이를 반대하고 조기택을 임명시키려고 하였다. 이방 임명을 둘러싼 대립은 1888년(고종 25) 10월에서 1889년(고종 26) 4월까지 약 6개월이나 지속되었다. 1889년 4월에 함안 군수 오횡묵이 부임하자, 남당 세력과 북당 세력은 각자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쟁소(爭訴)로 발전하기에 이른다.
수령-이향(吏鄕) 세력이 연결된 수탈 구조에서 이방의 임명권 장악은 곧 부세 운영권의 장악을 뜻한다. 따라서 향임(鄕任)과 이임(里任)의 장악을 둘러싼 향전은 포흠(逋欠) 문제와 결부되어 더욱더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포흠 문제의 주된 원인은 수령과 이임의 잦은 교체에 있었다. 이 문제를 인식한 당시 함안 군수 오횡목은 이방 임명의 폐단을 막고자 규정을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방의 임명, 포흠 문제를 둘러싼 향전이 더욱 첨예하게 나타났다.
[결과]
이방의 임명권과 포흠 문제를 둘러싼 향전은 1894년(고종 31) 함안 농민 항쟁을 일으키게 되는 원인이 되었다.
[의의와 평가]
함안 지역 향전은 당시의 수령-이향 세력이 연결된 수탈 구조를 여실히 보여 주는 대표적 사례이다. 함안 향전은 1894년 일어난 함안 농민 항쟁의 주된 원인이 되기도 한다. 함안 농민 항쟁은 19세기 체제의 모순을 극복하고자 일어난 농민 항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