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2003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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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東明 學校 |
영어공식명칭 | Dongmyeong School |
분야 | 문화·교육/교육 |
유형 | 기관 단체/학교 |
지역 | 경상남도 함안군 여항면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노익환 |
[정의]
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함안군 여항면에 있었던 교육 기관.
[교육 목표(교훈 포함)]
교육 목표는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쇠퇴해 가는 유학을 탈피하고, 신문학을 가르쳐 독립 정신을 고취하는 것이었다.
[변천]
오봉(吾峯) 이연건(李鍊乾), 백헌(白軒)이중건(李重乾)이 함안군 여항면 두곡 마을에 있는 강마 서당(講磨書堂) 터에 1910년(순종 4) 11월경 동명 의숙(東明義塾)을 설립하였다. 이들은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서는 신문학을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하고, 개항기 유학자 일심재(一心齋)이용관(李容瓘)이 세운 강마 서당을 허물고 그 자리에 동명 학교(東明學校)를 설립하였다. 강마 서당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교실 6동을 건립하고 1913년에 개교하였다. 처음에는 남녀 공학 4년제로 운영하였으나, 일제의 탄압으로 야학으로 변경하였다. 학생 수는 시기에 따라서 100여 명에서 약 60여 명 정도의 규모였다.
담당 교사들은 이연건과 이중건의 지인으로 이희석(李熹錫)·안기호(安畿鎬)·여해(呂海)·이영재(李榮宰)·안영중(安英中)·이필수(李弼洙)·박건영(朴鍵灵)·강기수(姜琪秀)·이은상(李殷相) 등이었고, 이들은 학교 설립 취지에 부합하여 모두가 민족의식이 투철하였다. 동명 학교는 1919년 3월 19일에 열린 함안읍 만세 운동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다. 특히, 함안읍 만세 운동 당시 사용된 태극기와 「독립 선언서」는 동명 학교 교사와 학생들이 손수 제작하였다. 동명 학교는 일제의 온갖 탄압에도 불구하고 유지되어 왔으나, 1939년에 여항 공립 심상소학교 외암 분교장[현재의 외암 초등학교]이 신설됨에 따라 결국 폐교되었고, 이후 6·25 전쟁으로 소실되었다. 교품은 전부 외암 초등학교로 이전하였다. 학교 신축과 운영에는 이종곤(李鐘坤), 이학구(李學九), 이진구(李珍九)가 도움을 주었다.
[교육 활동]
동명 학교의 교과목으로 조선어, 노동 독본, 노동 산수, 일어가 있었으나 실제로 일본어는 가르치지 않았다. 그 대신에 민족의식을 고취시키기 위해 국사를 필수 과목으로 하였다.
[교가와 상징물]
1. 교가[작사 이연건/작곡 이석건]
여항산 굳센 줄기 뻗어진 곳에/ 여항산과 파봉산이 또한 솟았다/ 완계의 맑은 물은 흘러서 가고/ 앞으로 넓은 들이 터져 있구나/ 동무들아 굳세게 고함 지르자/ 그리고 힘 있게 나아갑시다/ 굳센 다리 강한 팔 우리 것이니/ 모든 것 깨트리고 새롭게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