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2007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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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安灌 |
영어공식명칭 | An Gwan |
이칭/별칭 | 관지(灌之),취우정(聚友亭)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경상남도 함안군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구경아 |
[정의]
조선 전기 함안 지역에서 은거한 학자.
[가계]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관지(灌之), 호는 취우정(聚友亭). 안축(安軸)의 7세손이다. 할아버지는 안해(安該)이고, 외할아버지는 성산 이씨이윤창(李胤昌)이다. 아버지는 안존도(安尊道)이며, 부인은 권순(權舜)의 딸 안동 권씨(安東權氏)이다. 아들은 안인로(安仁老)·안의로(安義老)·안덕로(安德老)이고, 사위는 오수정(吳守貞)·박윤수(朴允秀)·이희인(李喜仁)·권기(權紀)이다.
[활동 사항]
안관(安灌)[1491~1553]은 경기도 시흥[현 서울특별시 금천구 시흥동]에서 태어났다. 조광조(趙光祖)의 문하에서 교유하였고, 1510년(중종 5) 효성과 학행으로 천거되어 돈령부 참봉에 임명되었으나 사양하였다. 연이은 사화로 세상이 어지러워지자 1523년(중종 18) 동생 안탁(安濯), 조광조의 고제(高弟)인 박덕손(朴德孫)과 함께 경상남도 함안군여항산 속에서 은거하며 강학 활동에 전념하였다. 1537년(중종 32) 사직(司直)에 제수되어 잠시 나아갔다 여항산으로 돌아왔다. 1548년(명종 3) 만하봉(晩霞峰) 아래 사락동(士樂洞)에 취우정을 지어 강학하였다. 1552년(명종 7) 오위도총부 용양위 부호군(五衛都摠府龍驤衛副護軍)에 올랐다. 1553년 2월 23일 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 신음리 도음동(都音洞)에서 63세로 생을 마감하였다.
[학문과 저술]
저서로 2권의 『취우정 실기(聚友亭實紀)』가 전한다.
[묘소]
묘는 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 신음리 산38-1에 있다.
[상훈과 추모]
1780년 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 신음리에 신암 서원을 세워 안관을 제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