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201034
한자 天主敎
영어공식명칭 Roman Catholic Church
분야 종교/기독교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지역 경상남도 함안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주용민

[정의]

경상남도 함안군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로마 가톨릭교.

[변천]

남강(南江)은 경상남도 함안군과 의령군 사이를 돌아 나와 낙동강(洛東江)과 합쳐진다. 이곳에는 경상남도 함안군의 대산면과 의령군의 지정면이 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다. 특히 남쪽의 함안 지역은 지대가 낮고 경사가 완만하여 물의 속도가 느려지는 곳이다. 이곳은 남강의 흐름이 약해지면서 늪지가 형성되고 한편으로는 넓은 들이 시작되어 사람들의 생존이 가능하게 했지만 은밀한 곳이었다. 그 결과 남강 지역에서 낙동강을 만나는 곳까지 이어지는 강변 지역에 조선 후기 조정의 박해를 피해 남하했던 교우들이 몰려들어 살았다는 기록이 있다. 경상남도 의령 쪽은 성당 공소(城堂公所)와 덕천 공소(德川公所)가 있었고, 함안 쪽은 가등 공소(佳嶝公所)와 동박골 공소(洞泊谷公所)가 있었다.

경상남도 함안군 대산면 일대의 교우촌은 저습지에 살던 교우들이 점차 내륙으로 들어오면서 형성되었다. 이 교우촌은 1866년(고종 3) 병인박해(丙寅迫害) 이전부터 형성되어 있었다. 1895년(고종 32) 뮈텔(Mutel)[閔德孝, 1854∼1933, 아우구스티노] 주교가 발간한 『치명 일기(致命日記)』에 등장하는 순교자 구타데오[구한선(具漢善)[1844~1866]]도 이 지역 출신으로, 일찍부터 함안 지역에 천주교가 유포되고 있었던 상황을 잘 말해준다.

1883년(고종 20) 로베르 신부의 보고서에는 함안 지역의 공소 3곳이 등장하는데, 동천·논실·밤대 공소다. 동천 공소는 1885년(고종 22)부터 자취를 감추고, 밤대 공소도 1889년(고종 26)부터 통계표에 나오지 않는다. 경상남도 함안 지역에서는 오직 논실 공소(論實公所)만 끝까지 등장하고 있다. 논실 공소의 위치는 현재 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 산서리이다. 원래 이 지역은 경상남도 함안군 대산면에 속해 있었는데, 1973년 가야면이 확장되면서 편입되었던 것이다. 동천 공소와 밤대 공소는 1885년과 1889년에 없어지지만 그 자리를 읍(邑) 공소와 율량 공소가 대신하였다. 동박골 공소는 타케 신부의 1899년 교세 통계표에 처음 등장한다. 타케 신부는 부산 본당 주임으로 1898년 5월 부임했다.

경상남도 함안 지역에 피난 교우들은 저습지의 땅을 가꾸면서 차츰 내륙으로 들어가 교우촌을 형성하였다. 이 지역에 본당이 처음으로 건립된 것은 1932년 6월 5일이다. 이처럼 본당 설립이 늦었던 것은 교우촌이 주로 외곽 지대에 있었고 지금의 읍내에는 신자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의 함안 본당 땅을 매입하고 본당으로서의 기틀을 마련했던 사람은 당시 마산 본당의 베르몽 신부였다. 본당 신설이 발표되자 첫 주임으로 파리 외방 전교회 소속의 루이스 루카 신부가 부임하였다. 여러 사정으로 그는 대산의 가등 공소에 머물면서 가야읍으로 나가 본당 건물 신축과 전교 사업을 병행하였다. 지금의 함안 성당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 도항리(道項里)에 있었다. 도항은 한문으로 표기한 것이고 원래는 질목[지나가는 길목]이라 했다.

[현황]

현재 경상남도 함안군 내에는 가야읍함안 성당, 칠원읍칠원 성당, 대산면대산 성당 세 곳이 설치되어 있어 지역의 복음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경상남도 함안 지역도 한국의 여느 농촌 지역과 마찬가지로 1970년대 이래 이촌향도(離村向都)가 증가하면서 교세가 많이 약화되고, 신도 층도 점차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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