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2010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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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下基 敎會 |
영어공식명칭 | Hagi Presbyterian Church |
분야 | 종교/기독교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경상남도 함안군 대산면 기동안길 45-2[하기리 712] |
시대 | 근대/개항기,현대/현대 |
집필자 | 조규통 |
[정의]
경상남도 함안군 대산면 하기리에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고신) 소속 교회.
[설립 목적]
하기 교회는 경상남도 함안군 대산면 지역의 복음화와 이웃 사랑의 실천을 위해 설립되었다.
[변천]
하기 교회는 1909년 11월 31일 설립되었다. 하기 교회의 설립 연원에 대하여 『조선 예수교 장로회 사기(朝鮮敎長老會史記)』에서는 “함안군하기리(下基里) 교회가 성립하다 초(初)에 박성태(朴聖泰)의 전도로 안승환(安昇桓)김만협(金萬俠) 등이 신종(信從)하고 백산동 교회(白山洞敎會)에 내왕 예배하더니 지시(至是)에 예배당을 건축하니라.”고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 하기 교회서중근 장로의 증언에 의하면, 당시 백산리 교회가 아니라 경상남도 의령군 지정면에 위치한 백야리 교회에 다니던 신자들이 거리가 멀어 하기리에 교회를 시작한 것이라고 한다. 현존하는 자료가 극미하여 세세한 변천사를 기록하기는 어렵지만, 현재 장로로 시무중인 서중근에 의하면, “1919년 3월 11~12일, 15~16일의 만세 운동 때 교회에서 태극기를 제작하여 장터에서 경찰서까지 행진을 했다.”고 한다.
설립 초기에는 주로 전도 활동과 교육 활동이 있었다. 특히 당시의 경상남도 내륙을 다니면서 광범위한 전도 활동을 했던 서성희 전도사는 하기 교회를 비롯하여 주변 일대의 구혜 교회, 마산 교회, 취무 교회, 옥열 교회 등을 순회 사역했던 인물이다. 서성희의 지도로 이들 5개 교회가 일제 강점기 신사 참배에 반대하였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하기 교회는 100여 년 역사에도 불구하고 자료들이 상당량 소실되어 있는 상태이다. 그러나 현재 시무 중인 서중근이 수년 전부터 적극적인 노력으로 자료를 수집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현황]
2016년 현재, 하기 교회의 담임 목사는 공석인 상태이며 시무 장로를 포함한 10여 명의 성도가 예배 모임을 갖고 있다. 열악한 농촌 환경 속에서도 남녀 전도회가 교회의 본분인 복음 증거와 이웃 섬김의 자리를 지키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하기 교회는 경상남도 함안군 대산 지역의 교세 확장과 함께 일제 강점기에 애향애족의 정신을 계승하고 발전시켰던 곳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다수의 농어촌 교회가 그러하듯, 하기 교회 역시 산업화 이후 급속하게 인구가 줄어들면서 적은 수의 교인들과 노인들 위주로 운영되고 있다.